방송사 실세는 과연 PD일까. 최근 연예계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방송을 움직이는 진짜 실세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우선 SM엔터테인먼트 GM프로덕션 등 연예기획사의 막강한 파워가 드러나면서 기존 ‘PD=방송의 꽃’이라는 등식이 무너졌다.
인기 MC 김승현씨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특정 벤처기업 제품을 홍보해준 대가로 8,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 등 방송 주변세력의 숨겨진 파워도 일부 드러났다.
PD 진행자 작가 그리고 연예기획사간의 물고 물리는 방송 파워게임의 실체를 오락프로그램, 드라마, 코미디ㆍ가요프로그램 등 3개 장르로 나눠 취재했다.
■오락프로그램
방송3사 오락프로그램은 스타급 진행자가 좌지우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기 MC 신동엽의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11일 1년9개월 여 만에 막을 내린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집 단장 코너 ‘러브 하우스’가 대표적 사례.
이 코너는 한 달 전 신동엽이 MC 사임 의사를 밝혔을 때부터 존폐 여부가 거론됐을 만큼 그의 파워는 막강하다.
KBS 예능국의 한 PD는 “신동엽의 프로그램 장악과 출연자 관리능력이 워낙 뛰어난 만큼 일단 녹화가 시작되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는 형편”이라며 “오락PD 대부분이 새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가장 먼저 그를 떠올린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의 진행자가 되면 연출자나 출연자에 대한 권한도 생각 이상으로 크다.
KBS 2TV ‘이유 있는 밤’은 이휘재 유재석 송은이 김한석 등 개그맨 출신 MC들의 소속사인 G패밀리가 올해 봄부터 이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있다.
이휘재와 유재석은 진행뿐만 아니라 매주 프로그램 아이디어와 출연자 선정, 연출에도 적극 참여한다.
또한 이휘재 유재석 김한석은 KBS 2TV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MC 대격돌’ 코너에도 동반 출연, 요즘 가장 힘있는 진행자 군단을 이뤘다.
이에 비해 신인이 느닷없이 프로그램의 MC로 발탁되는 것은 십중팔구 PD가 전권을 행사한 경우.
한 매니저는 “지난해 모 신인연기자가 인기 주말 오락프로그램의 메인MC로 출연, 무려 6개월 동안 진행을 맡아 두 사람의 관계를 둘러싼 소문이 파다했다”며 “이는 MC 5, 6명이 단체로 진행하는 요즘 오락프로그램의 경향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방송중인 MBC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 드라마 작가는 출연자 선정부터 특정 헤어스타일 요구까지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같은 위치에 있는 작가는 김수현 임성한 이환경 등 10명이 안 된다.
‘그대 그리고 나’ ‘그 여자네 집’ 등을 집필한 인기 작가 김정수씨도 “내 경우 배역 이미지에 맞을 것 같은 배우를 국장이나 담당 PD와 협의하는 정도”라며 “배우 선정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드라마 작가는 그리 많지 않으며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 성격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출연자 선정은 역시 연출자의 몫이라는 지적이지만 이 경우에도 PD의 유명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김재형 이진석 윤석호 등 인기PD는 자신이 찍은 출연자 섭외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신인 PD나 외주제작사 소속 PD는 힘들다.
SBS ‘명랑소녀 성공기’를 제작한 외주제작사 인비넷의 이강훈 대표는 “SBS에서 일할 때는 몰랐는데 장나라를 섭외하면서 힘없는 독립프로덕션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고 말했다.
한편 드라마PD가 그래도 대접 받는 경우는 간접광고를 전제로 한 협찬사 선정 과정. 특히 제작비 협찬이 가능한 외주제작 드라마, 그 중에서도 스타 PD가 연출하고 스타 연기자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희망 협찬사가 줄을 잇는다.
‘모래시계’의 김종학 프로덕션이 제작, 김현주 한재석 김지호 소지섭 등이 출연한 SBS ‘유리구두’는 KTF로부터 무려 30억원 이상의 협찬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드라마 PD들은 “제작비 협찬 만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한 곳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스타 출연자의 유무와 시청률에 따라 협찬 여부를 결정하려는 ‘영리한’ 협찬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
더욱이 협찬사별 5,000만~1억원에 이르는 협찬금은 고스란히 공식 제작비로 충당돼 PD가 개인적인 이득을 챙길 여지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코미디ㆍ가요 프로그램
코미디와 가요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연예기획사의 입김이 강하다. KBS 2TV ‘개그 콘서트’는 심현섭 김준호 강성범 김대희 이태식 황승환 등 핵심 멤버가 모두 스타밸리 소속이다.
매니지먼트 업계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면 먼저 스타밸리 식구가 되는 것이 순서”라는 말까지 퍼져있다.
스타밸리는 특히 5월 ‘개그 콘서트’ 팀과 다른 소속 연예인인 서인석 노주현 최주봉 한혜숙 등과 함께 대규모 소년소녀 가장 돕기 공연을 펼칠 만큼 방송가의 실세로 자리잡았다.
이에 비해 가요 프로그램은 가수의 유명세에 따라 PD와 연예기획사간의 파워게임 양상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강 타 문희준 보아(SM엔터테인먼트) 박지윤 김태우(JYP엔터테인먼트) 등 인기 가수는 PD가 원한다고 해서 출연이 이뤄지지 않는다. 대형 스타의 경우 프로그램 출연 여부를 놓고 “첫 주 10위권 내에 들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조건을 내건다.
그러나 신인 가수의 경우는 역시 PD가 왕이다.
한 가수 매니저는 “1년에 100장의 음반이 나온다면 이중 90장은 TV나 라디오에 한번도 소개되지 않고 그대로 음반매장에 묻혀버린다”며 “음반의 직접 홍보는 물론 주말 오락프로그램의 잠깐 출연 등 신인가수의 간접 홍보를 위해 어떻게 하든 PD와 선이 닿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물의 연예인들
연예계 비리 수사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서세원 김승현 주영훈은 최근까지도 방송프로그램 진행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서세원은 KBS2 TV의 ‘서세원 쇼’를 약 5년간 이끌어왔으며 김승현은 MBC 라디오의 간판프로그램 ‘여성시대’와 SBS TV ‘도전 1000곡’의 진행을 맡았다.
가수 겸 작곡가 주영훈은 KBS2 TV ‘야! 한밤에’ MBC TV ‘전파견문록’ SBS TV ‘뷰티풀 선데이’에 고정 출연중이었다.
프로그램에 미친 이들의 영향력은 PD와 매니저들의 증언을 통해 어느정도 확인된다. “서세원씨는 사실상 상전이나 다름없었다”는 KBS 예능국 한 고위관계자의 고백이 대표적 사례.
서씨가 20여년 경력을 지닌 중견급이다보니 제작진이 진행 방식 등에 대해 마음놓고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세원 쇼’에는 서씨가 투자한 영화 ‘조폭마누라’의 주연이 출연하기도 했다.
김승현은 2000년 진행을 맡고 있던 SBS 퀴즈프로그램 ‘머리가 좋아지는 퀴즈’에서 무상으로 주식을 받은 벤처업체 제품을 홍보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주영훈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음반을 제작한 신인그룹 K-POP의 동반 출연을 조건으로 내걸고 특정 연예인은 출연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매니저는 “제작진과 진행자는 통상 친분관계로 똘똘 뭉쳐 있는 경우가 많다”며 “진행자가 특정 회사의 제품을 비공식적으로 소개해달라고 하면 이를 물리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제품에 대한 MC 멘트까지 달라진다”고 말했다.
KBS 예능국의 한 PD는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몇 안 되는 A급 진행자들을 잡으려면 그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줄 수 밖에 없다”며 “일부 진행자는 해당 프로그램의 연출자와 색깔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시민단체-방송사 입장대비
외주 제작은 과연 투명한 방송의 전제 조건이 될까. 외주제작과 관련, 방송사와 시민단체간 시각차가 극명히 대비되고 있다.
투명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는 독립프로덕션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날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게 사실.
시청률을 최우선 잣대로 삼는 3개 지상파 방송사의 연예프로에 인력과 자금이 집중되는 한 투명한 제작은 어렵다는 것이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가 지난달 가요 프로그램 비리와 관련해 “외주 제작을 통해 좀 더 전문적이고 다양한 방송이 가능하며 PR비 등 제작비 관련 비리도 근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동연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지난달 대중음악 발전을 위한 포럼에서 “방송사는 시청률에 연연해 댄스 발라드 등 특정 장르 위주의 프로그램 편성에 안주하고 있다”며 “다양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외주 제작 확대 등 방송사 제작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방송사 PD들의 시각은 다르다. 우선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245개 외주제작사 대부분이 질적 완성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지난달 방송된 MBC ‘아주 특별한 아침’에서 한 환경운동가의 목숨 건 시위를 기이한 취미생활로 왜곡 묘사한 것도 엄정한 제작철학을 갖지 못한 외주제작사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는 지적이다. ‘로비’에 대한 여과 장치 역시 부실하다는 것도 우려의 부분.
장동욱 SBS 예능국장은 “지상파 방송사는 책임 프로듀서(CP), 국장, 심의실 등 자체 여과장치가 겹겹이 있지만 소규모 외주제작사는 이러한 시스템이 전혀 없다”며 “이 같은 현실에서 가요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위해 제작을 외주제작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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