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되기를 권하는 사회 속에서 가난한 아빠들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대단하다고 한다. 탤런트 배용준이 ‘나는 부자 아빠를 꿈꿉니다’라며 가볍게 계단을 내려올 때 주눅들지 않는 아빠는 드물 것이다. 그는 아직 아빠도 아니면서 한해 수입만 수십억을 헤아리는 부자이다.올초 이주일씨의 폐암 발병을 계기로 금연 붐이 뜨거웠을 때 우리는 금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며 무언의 압력을 넣었었다.
제발 이번에 좀 끊어 보시지 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재떨이를 필요로 한다. 금연붐이 식으면서 TV 뉴스를 보는 남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나의 경우, 아킬레스건은 모유먹이기 운동이다. 두 아이를 모두 분유로 키운 나는 매스컴이 모유의 장점을 목청 높여 외칠 때마다 죄책감으로 가슴이 다 뜨끔거린다.
하지만 엄마들은 다 알리라. 그 힘든 9개월을 치르고 죽음보다 더한 진통을 거쳐, 애 낳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젖몸살을 앓아가며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특히 큰 애때는 출산휴가가 한달 밖에 되지 않던 80년대였다. 하루 빨리 몸추스르고 회사 다시 나갈 생각에 초조했던 나는 이틀인가 아이에게 젖을 물려 본 다음, 아예 젖을 멈추게 하는 주사를 맞았다. 손녀보다는 딸 걱정이 앞섰던 친정엄마의 권유도 작용했다.
모유의 장점을 열거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돌이켜 생각해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모유를 먹일 수 있을까. 조건이 변함없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야근을 밥먹듯 해야 하는 여성지 기자였던 내가 어떻게 아이에게 수시로 젖을 물릴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엄마들은 젖을 짜 냉장고에 보관해 먹인다고는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금연과 모유 먹이기는 실천할 수만 있다면 실천하는 것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마음먹은 대로 살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이 아니리라.
금연 뉴스를 보는 남편의 마음이 ‘누군 몰라서 못 끊나’라면, 모유 먹이기 뉴스를 보는 내 마음은 ‘누군 좋은 줄 몰라서 안 먹였는 줄 아슈’이다.
얼마 전 어떤 신문에서 금연이 정 어려운 사람들은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하고 첫 모금은 그냥 뱉으라는 조언을 하는 것을 보았다. 모유 먹이기도 마찬가지이다.
사정상 모유를 먹일 수 없는 엄마들을 위한 도움말도 있어야 한다. 분유가 아니라 암죽을 먹이더라도 엄마의 사랑과 정성만 충분하다면 모유 못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무식한(!) 소신이다.
뉴스를 보던 둘째가 “엄만 우리 소젖으로 키웠지”라며 눈을 가늘게 뜬다.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맞선다. 아니야 사랑으로 키웠어.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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