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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16)기자시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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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16)기자시절 ①

입력
2002.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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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도 아내(한윤복ㆍ韓潤福) 에게 종종 우스개소리를 한다. “커피 한잔에 당신에게 팔려 왔소.”사실인 즉 그랬다. 연세대 4학년 때인 1956년 나는 KBS에 다니던 친구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당시 경향신문 조사부 기자였다. 그 시절의 여성치고는 보기 드물게 주관이 뚜렷했는데 그것이 매력이었다. 옷 차림새나 말하는 데서도 검소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와의 첫 만남에서 커피 값을 자기가 냈다. 당시는 으레 남자가 차 값을 내던 시절이었다. 여자를 소개 받으러 나가면서도 나는 빈 주머니였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고학을 하고 있던 형편이었으니 커피 값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도 내 머리 속은 온통 커피 값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녀가 다방을 나서면서 선뜻 돈을 내는 게 아닌가.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나는 시원시원한 그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나의 이력서가 연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 왔는데 그들 중에는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꽤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겠다”며 농담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은근히 나의 연애담을 들려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렇지만 나는 남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추억이 전혀 없다. 복학 이후 대학 2,3학년 때 “우리 누나를 한번 만나보라”는 후배들이 더러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여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연애를 할 만한 시간도 넉넉치 않았다.

응원단장으로 학교 일을 하고, 또 복학생으로 강의에 충실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솔직히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이 자리서 다시 한번 밝히건대 내게 여자라고는 첫 만남 이후 지금의 내 아내밖에 없다.

내가 연세대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자, 연애 중이던 내 아내는 내게 조언을 했다. “우선 언론계로 가는 게 좋겠어요. 나중에 정계로 나가더라도 지금은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나을 거예요.”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1950년에 입학해 1957년에 졸업이니, 군대에 3년 동안 가는 사람이 흔치 않았던 때였던 지라 나는 자꾸 동년배에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남들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지름길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 데 당시는 언론계가 여타 분야에 빨리 진출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 해 가을 새로 생긴 동화통신사에 지원, 무난히 합격했다.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있었지만 졸업 예정자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동화통신사에서 나는 영어경제판을 만드는 특신부(特信部)에 잠깐 근무하다 곧바로 정치부로 옮겼다. 내가 인생에서 정치판을 접한 시초다. 그 때는 3대 국회 후반으로 나는 선배기자와 함께 국회에 출입했다.

입사 후 반년쯤 지난 1957년 4월7일 나는 결혼을 했다. 천주교 신자인 아내의 손에 이끌려 영세를 받은 뒤였다. 명동성당에서 혼배식을 마친 뒤 남산을 한 바퀴 돌고는 서대문의 처가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신혼여행을 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바로 출근을 했다. 당시 나는 기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지 않고는 내가 못 배길 지경이었다.

동화통신사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1년여 만인 58년 초 나는 대학 선배인 이동수(李東洙ㆍ전 동아일보 상무) 기자의 추천으로 동아일보 정치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정치부 기자로서의 나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동아일보 사장은 최두선(崔斗善ㆍ후일 국무총리)씨였고, 주필은 고재욱(高在旭ㆍ전 동아일보 사장)씨였다. 함께 일한 기자로는 권오기(權五琦ㆍ전 통일부총리), 이웅희(李雄熙ㆍ전 문공부장관)씨가 있으며, 후배인 공채 1기에는 남시욱(南時旭ㆍ전 문화일보 사장)씨 박경석(朴敬錫ㆍ전 국회의원)씨, 2기에는 김원기(金元基ㆍ국회의원)씨 이진희(李振羲ㆍ전 문공부장관)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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