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친일문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친일문학

입력
2002.08.15 00:00
0 0

그들은 천황폐하의 크신 뜻을 아직 헤아리지 못하였다. 천황폐하께서는 조선백성을 본래 일본민족과 꼭 같으신 인자하심으로 대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었고, 또 일본민족이 조선사람에 대하여서 동포의 정과 의를 가지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만일 그 때부터 그 청년들이 우리는 천황의 적자요 일본의 신민이라는 자각과 감격을 가졌던들, 조선사람은 더 많은 진보와 행복을 얻었을 것이다.>1941년 월간 신시대에 실린 춘원 이광수의 ‘그들의 사랑’ 중 일부다.

■2년 뒤 국민문학지에 발표한 소설 ‘가가와(加川) 교장’에서 춘원은 노골적으로 조선민족을 멸시하고 일본민족을 떠받든다.

가가와에게는 바보스런 얼굴이 좋았던 것이다. 도고(東鄕)나 야마모토(山本)나 영리한 인간은 아니다… 우직했기 때문에 집도 가정도 잊고 바다를 지키고 일만 했던 것이다.>

■도고는 2차대전 때의 일본수상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 야마모토는 태평양전쟁 개전당시의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를 가리킨 것 같다.

일어로 된 이 작품은 중학교 교장 가가와의 고매한 인격과 덕망에 감동한 조선인 학생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등장인물 가운데 조선인 이름은 모두 일본식이다. 이듬해 신시대에 쓴 시 ‘새해의 기원’에서는 첫 줄부터 천황의 성수무강(聖壽無疆)을 빌었고 황군의 승리를 예언했다.

■경기도 남양주 사능에서 광복을 맞은 그는 농민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며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나 정부수립 이듬해 반민특위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치욕을 당했다. 그래도 그는 뉘우치지 않았다.

‘나의 고백’을 통해 그는 친일이 민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강변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14일 일제시대 문인들의 친일행위를 사죄하고 친일문학인과 작품 명단을 발표했다. 작품 수로도 춘원은 103편으로 단연 1위였다. 이름을 얻기보다 더럽히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 57회 광복절 아침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