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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갯벌여행/바다에 와서, 바다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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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갯벌여행/바다에 와서, 바다를 잊는다

입력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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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에 들어서면서 바닷물이 차다. 물에 풍덩 뛰어들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바다여행은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서해안 갯벌여행을 떠나자.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넓은 갯벌을 거니는 기분. 눈을 통해 보는 생명의 움직임도 신비롭다. 아이들은 바닷가를 떠날 줄 모른다.

■신두리 갯벌(충남 태안군 원북면)

엄청나게 넓다.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파도가 백사장을 살짝 떠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달아났다. 물이 떠난 곳은 모래 갯벌이 됐다. 갯벌은 백사장의 수백, 아니 수천 배는 더 넓다.

‘어떻게 이런 바닷가가 아직 숨어 있었을까?’신두리 해변은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서해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물이 맑다. 그리고 끝없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완전히 썰물이 되면 망망대해가 그대로 갯벌이 돼 버린다.

이 모래 갯벌은 생명의 보고이다. 엽낭게, 달랑게, 빛조게, 개량조게, 떡조개, 큰구슬우렁이 등 이름조차 희귀한 갯벌 생물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특히 신두리 해변에는 다른 바닷가에는 없는 보물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구(砂丘)이다. 사구는 말 그대로 모래 언덕. 파도가 옮겨 놓은 모래가 아니라 바람의 작품이다.

서해안에만 모두 28곳의 사구가 확인됐고 태안군의 해안선에만 16곳이 있다. 신두리 사구는 길이 3.2㎞, 폭 1.2㎞, 넓이 384만 ㎢로 한반도의 사구 중 가장 넓다.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하면서도 잦은 북서풍이 해변의 모래를 퍼올려 거대한 언덕을 만들었다.

원래는 모래만 있었다. 물기 하나 없는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지형이 바뀌니 ‘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땅에 생명이 나타났다. 처음 생명을 틔운 것은 보잘 것 없는 풀.

긴 뿌리로 모래를 얽어 단단하게 터를 마련한 그들은 땅을 덮고 꽃을 피웠다. 개구리, 도마뱀에 이어 종달새, 흰물떼새, 꼬마물떼새 등이 둥지를 틀었다.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 보라색 꽃망울이 앙증맞은 갯완두를 비롯해 갯방풍, 모래지치, 동보리사초 등이 모래 바닥에 촘촘히 들어차 있다. 모두 멸종 위기의 희귀 식물이다. 신두리해수욕장 번영회 (041)672-4788

■민머루 갯벌(인천 강화군 삼산면)

강화도의 부속섬 석모도에 있다. 민머루 갯벌 탐사는 석모도 여행의 한 부분이다. 석모도 가는 길은 너무나 즐겁다. 차 타고, 배 타고, 걷고…. 본격적인 여행은 강화 외포리에서 시작된다.

외포리는 석모도행 카페리가 출발하는 곳. 여행객 대부분이 차를 갖고 섬에 들어가기 때문에 포구에는 사람 대신 차가 줄을 선다. 차가 줄을 서는 모습부터 이색적이다.

배를 타기 전 새우깡 한 봉지가 필수. 하얀 갈매기떼가 배를 따른다. 사람들이 던져 주는 새우깡을 먹는다. 던져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직접 물고기를 잡는 본능마저 잊은 듯한 이 갈매기들은 가끔 식당가의 쓰레기통까지 뒤진다. 그래서 ‘거지 갈매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10분 남짓이면 석모도 선착장에 닿는다. 석모도의 도로는 전장 20㎞. 버스가 있지만 배차시간이 길기 때문에 가급적 승용차를 가져가는 게 좋다.

선착장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민머루 갯벌이 있다. 물이 완전히 빠지면 무척 넓다. 모래 갯벌과 진흙 개펄이 섞인 형태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면 여벌의 옷이 필수. 농게, 칠게, 달랑게, 민챙이, 비단고동, 모시조개 등 서해안에 서식하는 거의 모든 생물을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이 갯벌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까. 민머루 해안 뒤로 높은 언덕이 있다. 낙조가 장관이다.

석모도에는 갯벌 외에도 둘러 볼 곳이 많다. 첫 번째가 보문사. 낙가산 기슭에 1,400년 가까이 서해 바다를 굽어 보고 있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희정대사가 창건했다. 경남 남해군 보리암, 강원 양양군 낙산사 홍련암, 전남 여수시 향일암과 함께 4대 관음기도도량으로 꼽힌다.

법당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보문사의 하이라이트인 마애관음보살입상에 닿는다. 계단은 모두 365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이 관음보살상은 1928년 보문사 주지 배선주 스님과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이 조각한 것. 일명 눈썹바위라 불리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의 밑부분을 깎았다. 인천시청 (032)440-2347

■학암포 갯벌(충남 태안군 원북면)

충남 태안반도는 해수욕의 천국이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30여 개의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포도송이처럼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해변으로 학암포(태안군 원북면 방갈리)를 꼽을 수 있다.

학암포는 태안읍에서 북쪽으로 20㎞쯤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당진-서산- 태안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여행지이다. 그래서 태안해안국립공원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손때가 덜 탔다.

바다 앞에 학암(鶴岩)이라는 바위가 있다.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고 밀물이면 섬이 되는 바위는 물에 잠겼을 때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 학암포의 첫 재미는 물이 빠져 학암이 육지가 됐을 때 찾을 수 있다.

모두 반바지차림으로 걸어나간다. 바위에 다닥다닥 엉켜있는 조가비, 모래갯벌 위를 쏜살같이 줄달음치는 손가락만한 게, 학의 등에 듬성듬성 자란 소나무….

두 번째의 재미는 낚시이다. 학암포는 낚시꾼들에게는 유명한 낚시포구. 나란히 들어서 있는 30여 척의 작은 배들은 모두 낚시꾼을 실어 나르는 배이다.

동 틀 무렵이면 낚시꾼들을 5~10명씩 실은 배들이 일제히 항구를 떠나 바다로 나간다. 뱃멀미가 심하다면 갯바위를 타도 좋다. 씨알이 배낚시만큼은 못하지만 잔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세번째 재미는 학암포의 물빛이다. 서해안에도 이렇게 청정한 바닷물이 남아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방파제에 서서 바라보면 50여m 쯤 멀리 떨어져 있는 물도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작은 고기들이 떼지어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낙조이다. 해변의 남쪽 끝에 서면 붉은 해가 학암의 등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위 위의 소나무들이 까만 실루엣으로 반짝이고 바다와 해변은 온통 붉은 기운으로 뒤덮인다.

학암포관리사무소(041)674-2608

■남당 포구 갯벌(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홍성군 서부면)은 작은 포구. 조선 영조때 학자인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의 고향이다. 마을 이름은 그의 아호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덩치답지 않게 수많은 해산물이 집산하는 곳이다. 새조개, 광어, 우럭 등이 많이 난다.

천수만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 물이 빠지면 끝없이 펼쳐지는 갯벌이 매력이다. 갯벌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 있다. 게의 무리이다. 발걸음을 조심해야 할 정도이다.

충남 홍성군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 작은 포구는 가을 만큼은 천수만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된다. 대하 때문이다. 500m 남짓한 포구의 길에 100여 곳의 새우구이집이 들어선다. 서울은 물론 멀리 부산이나 광주에서도 새우의 담백한 맛을 즐기려는 미식가들이 줄을 선다.

남당항은 특히 일몰이 아름답다. 해는 바다로 떨어지지 않고 천수만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길게 누운 안면도로 진다. 여름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홍성은 일제시대 조국애를 불살랐던 두 영웅의 고향이다.

만해 한용운과 독립운동가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이 곳에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결한 기상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이다. 홍성군청 문화공보실 (041)630-1224

■갯벌 생태를 한눈에…

갯벌 여행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갯벌 생태에 관한 책. “아빠 이게 뭐야?”라는 아이의 질문에 머쓱한 침묵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책을 펴놓고 함께 정체를 탐구하는 것이 ‘남는 여행’이다. 마침 갯벌 여행에 알맞는 책이 나왔다.

갯벌 탐사가 백용해씨가 쓴 ‘시원한 여행, 갯벌 속으로-충청도 편’(창조문화 간, 1만 3,000원)이다. ‘테마가 있는 수도권 갯벌 여행’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이전에는 인천ㆍ강화 편, 경기도 편 등이 있었다.

책은 단순하게 갯벌의 생명을 다루는 형식이 아니다. 각 갯벌마다 관찰할 수 있는 생물과 탐사 정보가 들어있는 생태지도를 실었고, ‘갯벌 자세히 들여다보기’에서는 어느 위치에 어느 생물이 살고 있는지, 잡는 요령은 어떤지 등을 담았다.

갯벌을 탐사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생각할 수 있도록 ‘환경 에세이’를 통해 필자의 갯벌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갯벌 주변의 문화 유적지는 물론,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 먹거리를 소개하는 ‘멋있는 집&맛있는 집’도 실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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