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3일 삼성전자 보고서 파문을 낳은 UBS워버그증권과 메릴린치증권에 대해 중징계를 내린 것은 증권사 분석보고서의 사전유출 관행을 차단하기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특히 이번 제재는 국내 증시의 큰 손이 된 외국계 증권사도 감독당국의 칼날을 비켜갈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향후 외국계 증권사의 불공정 영업이 해소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또 워버그증권의 삼성전자 분석보고서를 뒤늦게 접한 일반 투자자들은 주가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은 만큼 외국계증권사의 불공정 영업행위 등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도 새삼 주목받게 됐다. 이에 따라 당시 삼성전자 주가하락으로 손해를 본 일반 투자자들은 워버그를 상대로 손해배상이 잇따라 제기할 것으로 보여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워버그 보고서 사전유출 수법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5월7일 워버그증권의 반도체담당 애널리스트 조나단 더튼은 삼성전자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D램 가격 전망치를 48시간 이내에 하향조정할 것 같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동료 애널리스트를 통해 139명의 국내외 영업직원 및 애널리스트들에게 미리 알렸다. D램값 전망치를 낮춘다는 것은 삼성전자의 예상이익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투자의견도 낮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더튼은 또 8일 D램가격 전망치와 삼성전자의 2002년 및 2003년 순이익 및 목표가격을 조정할 계획이라는 이메일을 영업책임자 7명에게 보냈으며 다음날에는 회사의 공식승인을 받기 전에 영업직원 및 애널리스트 1,096명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삼성전자 투자의견을 떨어뜨린 분석 보고서가 개미들(일반투자자)에게 알려진 것은 더튼이 첫 이메일을 보낸 지 3일 후인 5월10일. 더튼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보고서를 사전 배포한 사실을 숨겼다. 이로 인해 5월7일까지 35만2,000원이던 주가는 워버그 보고서가 알려지면서 33만4,000원으로 3일만에 1만8,000원이 떨어졌다. 특히 보고서가 일반에게 알려진 당일에는 7.7%(2만8,000원) 폭락해 시가총액 4조원 가량이 하루 아침에 날아갔다.
원인규명에 나선 삼성전자는 워버그증권사의 보고서 사전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금감원에 조사를 의뢰하는 등 강경대응했다. 정보를 미리 입수한 외국인은 발표 전에 삼성전자 주식 45만7,000주를 순매도하며 손실을 줄인 반면 일반투자자들만 손해를 본 것.
▲관행화한 정보 사전유출
금감원의 이번 징계는 증권사 조사분석 자료에 대한 불공정관행에 처음으로 철퇴를 가했다는 점에서 증권가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분석보고서를 내기 전에 기관투자자와 특정고객에게 특정종목의 매수ㆍ매도 추천 예정일과 내용을 전화나 이메일로 알려주고,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가 함께 기업탐방을 하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일이 관행처럼 돼왔다. 특히 외국계 증권사는 외자유치 옹호 논리를 등에 업고 사각지대에서 불공정거래를 일삼아와 왔다는 게 중론이다.
감독당국의 제재가 그동안 솜방망이에 그친 것도 분석보고서 사전유출을 부추겨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컨대 금감원은 지난해 5월 증권업감독규정을 개정하면서 증권사가 기관투자자들에게 분석보고서 내용을 사전에 알려줬을 경우 이러한 사실을 반드시 공표토록 했으나,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은 채 이 같은 문제점을 방치해왔다.
금감원은 이번 주부터 14개 국내 증권사, 9개 외국 증권사를 대상으로 분석보고서의 사전유출 등 부당한 행위에 대한 현장검사에 돌입하는데,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의 사전 정보 유출을 차단하기위한 차단벽 설치와 내부통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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