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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재건축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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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재건축 유감

입력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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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새 집보다 오래된 고옥(古屋)을 좋아한다. 몇 년 전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해 집을 구하면서, 낡은 아파트가 새로 지은 아파트 보다 훨씬 비싸다는 사실에 놀랐다.부동산 중개업자에게 구식 승강기가 있는 아파트를 소개 받고 “아파트가 낡아 보인다”고 했더니 100년도 안 된 새 아파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파리 시내의 부자 동네인 15, 16구에서 100년 밖에 안 된 ‘새 아파트’는 찾아 보기 힘들다. 건물의 주춧돌이나 전면에 새겨진 준공일은 대부분 19세기의 어느 날이다.

■오래된 건물에서 생활하는 것은 당연히 불편하다. 윗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며, 승강기는 5명이 동시에 타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다. 겨울에는 제대로 난방이 안돼 실내에서도 스웨터를 걸치고 추위를 견뎌야 한다.

수압이 낮아 수돗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파리지앵들은 그 불편을 감수하며 고색창연한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편리를 위해 낡은 건물을 헐고 새 아파트를 짓자는 논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프랑스와는 건축문화와 주거환경이 다르다지만, 강남 아파트 값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는 재건축ㆍ재개발의 난립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주민들이 담합해 멀쩡한 아파트를 재건축 대상으로 밀어붙이고, 이 과정에서 투기세력이 몰려들어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한 달 새 1억원까지 오른 아파트도 나왔다. 평범한 회사원들이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수년을 모아야 만질 수 있는 돈이 불과 한 달 사이에 오가고 있는 것이다.

■강남 지역 투기세력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기준시가를 인상해 봐야 집값을 잡기는 어렵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분별한 재건축을 억제하는 것이다.

지은 지 30년도 안 된 멀쩡한 아파트를 헐고 새로 아파트를 짓는 것은 자원 낭비이자 환경을 훼손하는 범죄다. 당국이 내년부터 안전에 문제가 없는 아파트의 재건축을 불허키로 한 것은 만시지탄이 있지만 잘 한 일이다. 건설업체들도 아파트를 지을 때 적어도 100년 이상 견딜 수 있게 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새 건물보다 오래된 건물이 더 가치 있고 비싸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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