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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김지하 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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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김지하 시 ‘비’

입력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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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의 不在마저 리듬에 실어 노래김지하씨의 시집 ‘화개’(花開)를 읽다가 ‘비’라는 제목의 시를 만났다. ‘화개’에는 육체적ㆍ정신적 노쇠 이후의 삶이 감당해야 할 을씨년스러움을 잿빛 이미지에 담은 시들이 여럿 있는데, 굳이 칸막이를 하자면 ‘비’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시다.

그러나 생애의 후반을 정신의 암흑 속에서 보낸 독일 시인 횔덜린에게 시적 자아를 투사하는 ‘횔덜린’의 화자나, 독서인으로서 시력의 감퇴를 한탄하며 침침한 눈으로 살아야 할 여생을 걱정하는 ‘쉰둘’의 화자에 견주어, ‘비’의 화자는 몸에 한결 더 밀착해 있다.

말하자면 ‘비’의 화자는 ‘횔덜린’이나 ‘쉰둘’의 화자처럼 지식인이 아니라, 몸으로 한 생애를 감당하는 육체 예술가, 속된 말로 딴따라에 가깝다.

“리듬은 떠나고/ 비만 내린다// 내리는 빗속에/ 춤추며 하소하나// 리듬은 떠나고/ 비만 내린다.” 화자는 리듬에 민감해야 할 예술가인 듯하다.

노래꾼일 수도 있고 춤꾼일 수도 있고 음유 시인의 후예일 수도 있다. 아니 굳이 예술 종사자가 아닐 수도 있다. 리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한 생애를 살아온 사람이면 족하다.

그런데 생애의 어느 순간, 그는 리듬을 잃어버렸다. 아마 나이 탓일 것이다. 예전의 그는 빗소리에서 리듬을 듣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이제는 거기서 아무런 감응을 겪지 못한다. 굳은 감각을 되살리려고 춤추며 하소연해보기도 하지만, 리듬은 잡히지 않는다. 그가 추는 춤은 이제 아무런 신명이 담기지 않은 춤이다.

‘화개’에 실려있는 또 다른 시 ‘빗소리’의 화자는 “빗소리 속엔/ 미래의 리듬이/ 사산(死産)된 채로 드러나// 잿빛 하늘에 흔적을 남기던/ 옛사랑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비’의 화자는 빗소리에서 사산된 리듬마저 읽지 못한다. 급기야 화자는 자신의 아우성을 주변의 생물체와 사물들에게 이입한다.

“내리는 빗속에/ 온갖 것 소리지른다// 흙도 사금파리도/ 상추잎도 소리지른다// 닫힌 몸 속에서 누군가 소리지른다.”

빗소리에서 리듬을 읽어낼 감각을 화자에게 되찾아주기 위해 흙도 사금파리도 상추잎도 함께 소리질러 보지만 화자의 몸은 굳게 닫혀 있다.

리듬으로 미만한 세계와 화자의 몸 사이에는 부도체의 벽이 놓여 있다. 그래서 “외침의 침묵”만 흐른다. 결국 화자는 다시 한번 슬프게 확인한다. “리듬은 떠나고/ 비만 내린다.”

그러면 이 시의 화자는 과연 리듬을 잃어버렸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시의 독자들은 대뜸 알아차릴 수 있다. 리듬이 떠났다고 되뇌는 이 노래야말로 리듬으로 그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라. 거기에는 빗소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쾌한 리듬이 완강히 버티고 있다. 만약에 ‘비’의 화자가 김지하씨와 온전히 겹친다면, 리듬은 적막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듯한 이 시인을 아직 떠나지 않은 듯하다.

김지하씨는 리듬의 부재(不在) 마저 리듬에 실어 노래하는 시인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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