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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전통염색 강사 이병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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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전통염색 강사 이병찬씨

입력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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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찬(70.국립중앙박물관 공예교실 염색강사)씨가 18년 전 우리 색깔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을 때만 해도 전통염색을 가르쳐 줄 사람이 거의 없었다. 30여년간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염색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그에게는 제 2의 인생이 됐다.내가 30여 년동안 다닌 직장을 버리고 전통 염색에 손을 댄 것은 53세 때이다. 일본항공 지점장 비서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남보다 먼저 눈뜨게 됐고 휴가 차 외국에 나가면 우리의 아름다움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30대부터 취미로 매듭을 배웠는 데 아마 이 취미가 전통염색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전통 염색에 관심은 있어도 마땅히 우리 땅에서 스승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1983년 일본으로 떠나 전통 염색의 장인이라는 요시다 토미타로우(吉田富太郞)에게서 식물염색 기술을 배우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나는 요시다로부터 염색을 배우며 큰 위기감을 느꼈다. 우리의 전통 염색은 거의 끊겼는데, 일본에서는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1년 만에 귀국, 우리 고유의 전통 염색을 찾기 위해 박물관을 뒤져 문헌을 찾아보았지만 고려시대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조선시대의 것만 드물게 남아 있을 정도였다.

고려나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풀꽃으로 물을 들여 옷을 입었다. 한해살이 쪽으로 청(淸)을 내고, 괴화로 황(黃)을, 잇꽃으로 홍(紅)을 물들였다. 거기에 소귀나무 열매인 양매로 흑(黑)을 내고 옷감색인 백(白)을 포함해 오방색으로 생활 속에서 멋을 부렸다.

오방색 중에서도 기본색깔은 쪽인데, 일본 장인에게 배운 것으로 우리의 쪽빛을 내긴 어려웠다. 한마디로 염료가 다르고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돌아온지 2년 만에 가까스로 호남지역에서 둥근 잎 ‘쪽’을 찾아내면서 우리의 전통 청(淸)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나는 우리의 색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해인사에서 불사(佛師)들이 팔만대장경을 인쇄하던 때였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한 비구니스님의 회색 승복이 너무 고와 물었더니 진달래나무로 숯을 만들어 숯가루로 물을 들였다고 했다. 그 길로 돌아와 진달래 나뭇가지를 쳐서 숯을 만들어 회색을 재현해 냈다.

대개 회색 승복은 물푸레나무를 숯으로 만들어 물을 들이는데 진달래나무로 숯을 만들어 물들인 회색은 너무 아름다운 회색빛깔을 냈다. 전통염색에서의 색깔내기는 하면 할수록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독신으로 정년 이후에도 무언가 생계를 위한 일이 필요했던 나는 염색을 택하면서 나의 말년이 순항할 것으로 예상했다. 어리석게도 염색을 단순한 기술로 여겨 2~3년만 고생하면 생활수단도 되고 염색기술도 모두 섭렵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통염색을 통해 고유색을 완전히 복원하는 데는 엄청난 세월이 소요됐다. 전통 염색의 기초문헌을 만드는 데만 20년이 걸렸으며, 조선시대 오색지를 재현하는 데만도 3~4년이 걸렸다.

우리 주위에는 전통 염료가 널려 있다. 심지어 우리가 쓰레기로 버리는 양파껍질도 좋은 염료 재료이다. 경동시장에서 파는 생약재도 모두 전통염료에 사용될 수 있다. 염색할 때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잡념을 버리고 몰두해야 한다. 묘하게도 물을 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어지럽거나 급한 마음으로 염색을 하게 되면 색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도를 닦듯 깨끗하고 정리된 마음으로 염색을 하게 되면 그만큼 고운 색깔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또 재능과 감성도 필요하다. 나는 내가 딱히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격대로 고집스럽게 타협하지 않고 전통염색에 매달려왔다.

요즘은 숫고사 모시 생고사 비단 등에 염색을 하고 있다. 염색은 합성이든 천연이든 우선 물이 빠지지 않아야 하고, 얼룩이 지지 않아야 하며. 색이 고와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번 시작했다 하면 몇 시간씩 걸리는 작업은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있고 퇴직금도 다 쏟아 부어 돈도 떨어져 힘들어 그만 두려고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전통 염색을 상업화하는 것 보다 우리 색을 찾고 전수하는데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생각처럼 전통염색이 내 생계가 되지도 못했다.

그러던 차 1990년 제15회 한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전통 염색을 천분으로 알고 살기로 했다. 상만 받지 않았다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게다가 전통염색을 완전히 복원하기까지 내가 해야 할 몫이 남아있다는 책임감도 이 힘든 작업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다. 문헌을 찾아 재현하고 기술해야 하는데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한자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또한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7년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통염색을 가르치고 있다. 나를 통해 전통 염색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큰 보람이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한복제작자, 의류학강사, 무대디자이너들로 이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도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는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일을 하리란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늦든 이르든 전통염색을 선택했을 것이란 데는 의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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