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가 있다. 그 가사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자는 자유롭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믿는다.지난달 31일 장상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부결을 보면서 이 노래를 떠 올렸다. ‘남자는 정치, 여자는 도덕’이라는 노래가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장상씨에 대해 쏟아진 언론의 모든 비판 내용에 다 동의한다. 부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지도 않았다. 욕 먹을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봤다.
장씨에 대해 반대를 표명한 시민운동 단체들과 일부 신문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면서도 그간 남성 총리들은 얼마나 깨끗했던가 하는 식의, 양시양비(兩是兩非)론을 가졌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점만큼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건도 그렇거니와 우리 사회 전반에 ‘남자는 정치, 여자는 도덕’ 이라는 잣대가 통용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남자를 평가할 때는 ‘도덕’보다는 ‘정치’를 보지만, 여자를 평가할 때는 ‘정치’보다는 ‘도덕’을 본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불순한 음모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현실적으로 남자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의 경우엔 평가할 것이 주로 ‘도덕’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현실이 만들어 내는 ‘학습 효과’다.
사안별로 따져줘야 할 경우에도 ‘남자=정치, 여자=도덕’이라는 등식이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에서 작동하게 되면 본의 아닌 여성 차별을 저지를 수 있게 된다.
왜 그런가? ‘정치’는 다양성이 인정되지만 ‘도덕’은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엔 답이 여러 개지만 ‘도덕’엔 답이 하나밖에 없다. 이는 이념적.정치적 성향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 환영 받지 못하는 걸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장씨의 경우에도 ‘김활란상 제정과 친일관’ 문제가 주요 검증 의제가 되어야 했지만 신문들은 이건 비교적 작게 다뤘으며, 친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신문은 아예 외면하거나 매우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두 신문을 제외하면 다른 신문들은 그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봤기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닐까?
각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똑같은 도덕적 해이를 저질러도 우리는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경향이 있다.
그게 꼭 무슨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여자가 원래 더 도덕적이지 않느냐’는 달갑지 않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똑같이 술 먹고 실수해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훨씬 더 큰 흉이 되는 것도 이런 이치와 무관치 않다.
공중에 띄워놓고 땅에 떨어뜨리지 말고 해이해지고 실수할 권리도 똑같이 주는 게 공정하지 않을까?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