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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젊은 총리, 짧은 재임

입력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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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인 한국 사람끼리 만나 일을 하거나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 대해 가지는 큰 관심은 나이일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가 적은가를 알고 싶어한다. 동갑끼리 만나면 모든 것을 터놓으려는 의식도 특이하다.나이를 의식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여서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이가 무시되어야 할 공적인 관계에서도, 나이 적은 상사와 나이 많은 부하의 관계는 의식과 행동양식의 갈등으로 조직에 미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식 속에 있는 우리 사회에서 50세의 총리가 탄생하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장대환씨를 총리서리로 임명하자 사람들이 놀란 것은 그의 나이였다. 다른 자질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총리가 그렇게 젊어서 뭐가 될까’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김대통령의 두 차례의 총리서리 임명을 ‘깜짝 카드’라고 평하는 사람이 많다. 한 사람은 여성이었고, 한 사람은 장관 평균보다 아홉 살이나 적은 50세이기 때문이다.

어느 깜짝 카드에 사람들은 더 놀랐을까. 연령층과 성별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60대의 여성총리보다 50세의 젊은 총리를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추측컨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출세한 장관이나 고위 공무원들의 심리적 당혹감도 클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나이를 그리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젊은 상사와 나이 많은 부하의 관계가 우리처럼 미묘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일을 중심으로 인간거래가 형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직이나 국가 중심인물의 나이가 그 조직과 사회내의 의식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라는 것은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 좋은 사례가 있다.

1992년 빌 클린턴이 47세로, 앨 고어가 46세로 정부통령에 당선됐을 때 미국 사람들에게도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찍어 놓고 놀랐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 때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40대 증후군’(forty-something syndrome)이라는 심층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각종 조직의 간부로서 활발하게 핵심적인 일을 하던 40대 남자들이 갑자기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60년대 반전운동 세대로서, 80년대 성공한 야피족으로 미국사회 본류를 타고 있던 이들이, 자기 또래가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는 대통령으로 갑자기 부각되자 자신이 왜소해지?심리적 공황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출현이 미국을 주기적으로 새로운 시대로 이동시키는 리더십의 변화로 평가를 받았다. 탈냉전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미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미국인들은 전후세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꼭 그런 마음을 갖고 투표를 한 것이 아니지만, 시대적 흐름이 유권자의 의식을 움직였다고 본다. 40대 초반에 출현한 토니 블레어 총리도 그렇고, 역시 40대에 거대하면서도 조각난 러시아 유산을 물려받은 푸틴 대통령의 출현도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국민이 선택한 젊은 대통령이 출현해 시대변화를 이끌지도 모른다.

대통령 측근이 장대환 총리서리를 토니 블레어 같은 세계의 젊은 지도자에 비교하며 국정의 새로운 바람을 얘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정치 수사일 뿐이다.

정권초기라면 그런 평을 들을 만 하다. 그가 총리인준을 받아도 재직기간은 6개월도 안 된다. 그래서 시중에선 젊은 총리임명을 희화적(戱畵的)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폭될 수 있다는 위험신호다.

새 총리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정권말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 일은 결코 쉬운 일도 작은 일도 아니다. 그리고 젊기 때문에 국정 현장을 보다 풋풋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이런 것을 바란다.

그러나 국민은 장총리 서리를 모른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그가 국정에 대해 어떤 사고와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잘 밝혀주기를 바란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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