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활동이 왕성한 여배우 군단의 리더격인 이미연이 화려하게 데뷔한 영화는 1989년 여름방학에 개봉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그는 TV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청초함으로 모든 매체를 오가며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니 한마디로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비가 줄줄 오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개봉 날, 청계천의 아세아극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배에 사인을 해달라는 남학생, 악수 한번에 손을 부여잡고 울먹이는 여학생 등으로 극장 안은 콘서트장을 연상하게 할만큼 난리였다.
영화는 ‘얄개’ 시리즈나 ‘진짜진짜 미안해’ 시리즈 이후 잠들어 있던 청소년 영화의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다.
‘행복은…’은 이미연의 존재를 지금까지 이어오게 한 힘이 되었고 한국 영화계를 움직이는 파워 1위인 강우석 감독을 있게 했고 기획영화의 산실인 영화사 ‘신씨네’라는 파워집단을 만들어낸 영화였다. 내게는 영화인생의 첫번째 영화로 잊을 수 없는 영화이다.
이듬해 그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가을여행’ 등에 출연해 이미지의 정체기를 통과하더니 ‘눈꽃’ ‘살어리랏다’를 통해 성인연기에 도전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좀 이른 결혼과 함께 주춤하더니 다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돌아왔을 때 “맞다. 우리에게 이미연이라는 배우가 있었지”하고 다시 깨닫게 됐다.
이후 ‘넘버3’ ‘여고괴담’ ‘주노명 베이커리’ 등을 통해 코믹과 드라마를 넘나드는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이면서 여자로서 인생 최대의 고비가 될지도 모르는 이혼을 치르고 그녀가 또다시 거듭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너무 일찍 누군가의 여자가 된 것이 마치 서운했던 것처럼 그녀는 요즘 13년 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돌아간 듯 인기를 누리고 있다.
관록 붙은 얼굴에 신뢰를 주는 연기, 책임이 따르는 역할까지 3박자를 갖춘 배우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녀를 보며 이젠 관객들도 연예인을 새롭게 향유할 줄 알게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한 잔을 마셔도 시원시원하게 마실 줄 아는 주도(酒道), 싫으면 싫고 좋으면 맨발로 뛰어드는 의리,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그녀 평이다. 당당한 자기만의 성을 쌓으며 난초의 단아함을 닮아가고 있는 이미연.
실제로 만나면 목소리부터 말투 손짓 발짓이 남들의 두 배만큼 크고 터프한 그녀는 배우이기 이전에 한 여자로서 인간적인 매력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삶의 방식이 있다.
13년을 영화인으로 살면서 힘들 때마다 내가 처음 만났던 영화와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그때마다 그녀가 늘 떠오른다. 최근 ‘중독’의 촬영현장에서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도 어디선가 나와 함께 걷고 있다는 따뜻한 위안으로 번쩍 힘이 다시 났다.
/정승혜 영화컬럼니스트 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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