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의 새 음반 ‘솔베이지’는 처음부터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공연을 하기에는 록 사운드가 제격”이라는 판단에서 리듬감이 강한 다양한 분위기의 록을 전에 없이 강조했다.모던 록 ‘출근’, 1970년대 일본 고고를 떠올리게 하는 타이틀 곡 ‘동경소녀’, 랩이 가미된 애시드풍의 ‘비타민’ 같은 노래들이 음반의 중심인 3~5번 트랙을 차지하고 있다. 적당히 빠르고 경쾌하며 관객의 흥을 돋울 수 있는 곡들이다. 감각적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김광진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얼 기대하는지 잘 안다. “더 클래식 시절의 ‘마법의 성’ 같은 발라드죠.” 첫 곡 ‘솔베이지의 노래’는 성공에 대한 부담으로 한동안 의식적으로 피해온 ‘마법의 성’과 가장 닮은 노래로 꼽는다.
마지막 곡 ‘약속’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 담백한 피아노, 뻔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노랫말, 그리고 여리게 다가와 오래도록 남는 보컬이 이른바 ‘김광진표 발라드’의 전형을 보여준다. 감상적이다.
새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은 둘 사이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각각의 노래들은 듣는 사람이 긴장을 풀지 않도록 세밀하게 배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넘치지 않는 변화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중반부에는 단순하고 친근한 사운드가 휴식을 준다. 약간의 반전 후 차분하게 마무리한다. 몇 곡을 건너뛰거나 중간에서 듣기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즐거움은 ‘인간 김광진’을 좀더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김광진은 노래 ‘마법의 성’처럼 동화 속의 인물처럼 다가왔다. 소년같은 감성과 여린 목소리가 그랬고 MBA 출신의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가수라는 상이한 직업을 가진 것도 그랬다.
그를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음반에서는 그의 삶이 부분적이나마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머리가 무거워 어젯밤엔 너무 마셨나 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디부턴 생각이 잘 안나/휴일이 아니야 오늘도 똑 같은 지하철로…출근기에 어서 체크해야지/모니터엔 움직이는 숫자들이…’(‘출근’) 같은 노랫말은 영락없는 30대 샐러리맨의 심정이고 징징 울려대는 단순한 기타 반주가 인상적인 ‘유치원에 간 사나이’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다섯 살 난 아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다. 부인 허승경씨가 노랫말을 썼다. “나중에 커서 아빠가 자기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에서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다.
한동안 직장 없이 살았던 그는 쉬는 동안 시험을 보는 데만 3년이 걸리는 CFA(국제재무분석사) 자격증을 따 다음달부터 투신사에서 다시 일한다. “칼을 목에 대고 사는 듯한 직장생활이지만 그 긴장감이 음악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요. 음악은 주말에 만들면 되구요.”
김광진은 17,18일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웬만하면 수록곡 11곡 전부를 부를 계획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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