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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 (12)오에 겐자부로 ‘인간의 양(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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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 (12)오에 겐자부로 ‘인간의 양(羊)’

입력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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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언제나 최소한의 선이며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법 앞에 선행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지 않다.뺑소니 운전자는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벌주어야 하지만, 그 자가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미군 병사일 경우에는 예외가 된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지독한 일이 생겨버렸군. 하지만, 곧 괜찮아지겠지.’ 유능한 검찰이 갑자기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재판권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한 사이에 사건은 조금씩 잊혀진다.

“망각하는 능력은 복종하는 능력에 비례한다, 그것은 길들여진 양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그의 소설 ‘인간의 양’(1958)에서 말했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고, 그것을 외면함으로써 불의에 길들여지는 양.

일상 속에서, 일상과 더불어 불의를 망각해 가는 양. 언젠가 니체도 노예의 도덕을 어린 양에 빗대어 말했던 적이 있다. 양은 자기를 잡아먹는 맹수에 대한 원한을 상상 속에서 복수하는 것으로 자위할 뿐이다.

무대는 달리는 버스 안이다. 한 떼의 술 취한 외국인 병사들이 손에 나이프를 들고 귀가 길의 승객들을 희롱한다.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하기 때문에’ 순순히 병사들이 시키는 대로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드러낸 채 ‘양’이 된다.

나머지는 무기력하게 병사들의 놀이를 지켜본다. 모두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치욕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인 겨울밤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그 차가운 공기 속에 까발려진 엉덩이를 드러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그 상태 그 모습으로 있었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얼마간의 굴욕과 희생과 부끄러움을 지불함으로써. 그리고 시간의 도움으로 그 굴욕과 희생과 부끄러움의 자리를 조금씩 지워나감으로써. 하지만 피곤과 무기력을 핑계로 침묵하는 한 굴욕과 희생과 부끄러움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후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양’들이 술 취한 외국인 병사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는 동안, 그 광경을 외면하고 있던 나머지 승객들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자 모두 한마디씩 한다.

“나는 말 못하고 보기만 한 걸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은 아닌 것 같아요. 익숙한 듯한 짓거리였어요.” “수치를 당한 자, 부끄러움을 당한 자는 단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등등.

하지만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출 때마다 사람들은 각자 황급히 제 갈 길로 가버리고, ‘양’들도 서둘러 익명 속으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다. “벙어리, 우리 ‘양’들은 불의의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완강하게 자기 이름을 숨기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름을 숨기는 것만으로는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 않는다.

‘양’들과 구경꾼들의 탓만은 아니다. 그들의 침묵 속엔 불의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과, 그 불의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또 한번의 수치심과 좌절감 따위가 숨어 있다.

최초의 피해자이면서 최후까지 버스에 남아 있었던 ‘양’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목격자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가지만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경관들의 조롱과 무성의한 태도에 겁을 집어먹은 채. 그리고 그 순간 불의는 불신과 한 몸이 된다.

이제 모두 지쳤다. 하지만 끈질긴 목소리 하나가 끝까지 따라붙는다. 따뜻한 아랫목과 밥 한 그릇의 평온한 일상으로 도망쳐도 그 목소리는 줄곧 뒷목을 잡아챈다.

절망과 분노로 가득찬 목소리는 이렇게 울부짖는다. “네 이름이나 네가 당한 굴욕이나 모두 밝혀주마. 그리고 외국 병사들에게도 너희들에게도 죽을 만큼 부끄러움을 당하게 해 주마. 네 이름을 밝혀낼 때까지 나는 결코 네게서 떠나지 않을 거야.” 망각과 복종을 거부하는 최후의 목소리다.

경기 양주군 효촌리 국도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이 사망했다. 지방 선거가 있었던 6월 13일의 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월드컵 16강 진출을 앞두고 포르투갈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거는 힘들게 치러졌고 미군들도 여중생들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6월 한달 내내 우리는 모두 ‘붉은 애국자’였다. 사건이 발생한지 두 달이 지났다. 그리고 미군 측은 사고군인에 대한 재판권을 한국에 양도하기를 끝내 거부했다.

/권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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