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못해 주눅들고 기죽었던 여성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이들이) 가족과 사회를 향해 떳떳이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바람도 간절하구요.”서울 노원구 중계4동 마들여성학교 노정원(盧定嫄ㆍ36ㆍ여) 실장은 ‘한글교육 전도사’이다.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해 12년째 한글교육에 매달리고있다.
’첨단 시대라는 요즈음 한글교육을 받아야 할 성인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구심을 “아무래도 12년 전 보다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돌려서 물어봤다. 노 실장의 답변은 예상밖이었다.
“전혀 줄어들지 않았어요. 찾아오는 여성들이 10여년 전 여성들 보다 경제나 시간적인 면에서 다소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문맹률은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
노 실장은 또 “여성이 교육에서 상대적으로 소외 받는 것은 경제적인 요인 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를 비롯한 사회ㆍ문화적 요인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현재 한글ㆍ영어ㆍ한문교실 등 총 9개반에 1,300여명의 늦깎이 학생들이 공부에 매달리고있다. 개교 이래 최대규모다.
1990년 ‘상계어머니교실’로 출발한 이 학교가 2000년부터 마들주민회로 확대되고, 교육기능이 산하 마들여성학교로 재편된 이유도 ‘자아’를 찾으려는 주부들이 급속히 늘었기 때문이다.
노 실장은 “마들여성학교 학생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으려면 단순한 글 깨우치기를 넘어 평생교육 체계와 생활공동체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학교는 재활용품 교환과 유기농 식품 먹기 운동 등을 벌이는 ‘녹색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마을주민이 밤시간 모여 다과를 나누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쉼터’도 곧 열 계획이다.
동네 장애아나 학교부적응아들을 돌보는 ‘마들창조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노 실장은 지난달 학생들과 함께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 시위’에 참석하기도 했다. 모든 관심이 가족에 묶여있는 주부들의 시야를 이웃과 사회로 넓히기 위한 시도이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자금과 인력이 너무 부족해요.” 노 실장은 무보수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12명의 교사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특히 영어 등 교사부족 과목이 태반인데도 요즈음 젊은이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렇지만 노 실장은 “방송통신대학 졸업 예정인 우리학교 출신 2명이 내년부터 교사로 참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12년간의 농사가 드디어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정영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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