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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13)성장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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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13)성장시절

입력
2002.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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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모든 한국 사람이 그러하듯 나의 어린 시절은 일제에 대한나쁜 기억들로 가득하다.나는 일제의 우리 민족 탄압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 보고 몸으로 경험했다. 훌륭한 선생님들을 여럿 만나 민족 의식을기를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1932년 2월25일 대구 달성공원 옆 시장 북통(北通)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남 합천 태생인 아버지(이덕상ㆍ李德祥)는 동래(현재 부산 사하구) 출신의 어머니(박순금ㆍ朴順今)와 결혼하자마자 대구에 터를 잡아 정미소를 운영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구김살이 없고 명랑한 소년으로 자랐다.

^집 근처의 수창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슬픔을 겪었다. 초등학교5학년 때 3살 아래 동생인 천섭(千燮)을 잃었다. 동생은 초등학교2학년 때 젊은 일본 선생에게 두들겨 맞아 뇌를 다쳤고, 이 때문에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내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동생에게 잔인한 짓을 한 일본인 선생을 증오하고 한을 품었지만 어린 나이에, 그것도 극악한 일제 치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땅을 치고 분노하는게 전부였다.

지금도 목놓아 울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후일 내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것도 나라 잃은 설움을 어린 나이에체험,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인 선생에게 동생을 잃은 내가 민족학교인 대륜중학교(6년제)를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일이었다. 대륜중학교는 3ㆍ1 운동 직후 대구지역 독립운동가인 홍주일(洪宙一) 김영서(金永瑞)정운기(鄭雲驥) 등이 세운 학교였다.

특히 대륜중학교에는 민족시인 이상화(李尙火) 선생이 교편을 잡고 있었다. 이상화 선생은 단 한 푼의 월급도받지 않았으며 늘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깨우치려 애썼다. 당시 교장 선생이었던 이효상(李孝祥ㆍ후일 국회의장) 선생도 학생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돼주었다.

^대륜중학교는 다른 공립학교와는 분위기가딴판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제는 일본어를 상용어로 쓰도록 강요했다.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면 퇴학이나 무기정학을 시키던 때였다.

그러나 대륜중학교에서는절반 정도 되는 우리 선생님들이 일본 형사들의 눈을 피해 가며 우리말로 수업을 했다. 근로 동원 시간에도 학생들은 끼리끼리 모여 김구(金九) 선생과이승만(李承晩) 박사 얘기를 하곤 했다.

^넉넉했던 가세는 광복 후 내가 중학교3학년이 되면서부터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안 풀렸기 때문이다. 점심은 늘 찐 고구마였다. 친구들이 볼까 봐 점심 시간이면 교정한 구석에 숨어 눈물 젖은 고구마를 먹곤 했다. 그럴수록 공부는 더욱 열심히 했다. 2학년 때 131명 중 13등이었던 내 성적은 3학년 때8등, 4학년 때 4등, 5학년 때는 3등, 졸업반인 6학년 때는 2등까지 올라갔다.

^당시 대구에서 나는 유명했던 편이다.공부도 공부였지만 농구 선수로, 응원단장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내가 7대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여성 유권자들이 날 많이 지지한 것도 나중에 알고보니 대륜중학교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재규(金載圭)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된것도 대륜중학교 시절이다. 김재규 선생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육사 2기 동기이며, 고향 후배이기도 하다. 내가 3학년 때 김천중학교에서 대륜중학교로옮겨 왔다. 젊고 정열적이었던 김재규 선생은 농구 선수이자 응원단장인 나를 특별히 아꼈다. 6, 7대 국회의원 시절 박 대통령, 김재규 장군 등과청와대에서 자주 저녁을 함께 하게 된 것도 그런 인연 때문이었다.

대륜중학교 시절의 나. 훌륭한 선생님을 많이 만났고 제법 이름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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