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이 쌀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개방압력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위기를 맞고 있다.2004년말 시한인 쌀 재협상 부담과 더불어 2000년 시작된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에도 최근 난기류가 밀려들기 시작한 것.
농산물 관세 감축을 둘러싼 수출국들의 공세에 미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앞에 나섬에 따라 수출ㆍ입 국가간의 팽팽한 힘의 균형이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힘의 균형
미국은 지난 달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시장접근 분야 농업협상에서 우루과이라운드(UR) 방식의 관세 감축 반대입장을 공식 천명했다.
그 대안으로 케언즈그룹이 주장해 온 ‘스위스 공식’에 기초해 모든 농산물의 수입관세가 25%를 넘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스위스공식이란 모든 농산물의 관세 상한을 설정, 수입국이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고율 관세를 적용해 온 주요 품목관세를 대폭 낮추도록 하는 것.
UR 방식은 평균 관세율만을 규제, 주요품목에 고율관세를 매기고 덜 중요한 품목에는 낮은 관세를 매길 수 있었다.
호주 등 18개 케언즈 회원국가와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이라는 막강한 원군을 확보함에 따라 우리나라와 EU 등 UR방식을 고집하는 국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전망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최종 원칙 합의에서 미국이나 케언즈그룹의 주장이 100% 반영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하지만 100% 이상 고율관세 품목에 대한 규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피하기 힘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이 고비
현재 국내 농산물의 평균관세율은 약 67.1%(7월말 현재). WTO와 약속한 2004년 말 평균관세율(64.3%)에 근접해 있어 당장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스위스공식이 적용되거나 고관세 품목 규제가 시장개방 원칙으로 강제될 경우 한국 농업은 초토화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우리 농산물 가운데 100% 이상 고율 수입관세를 통해 국내 시장을 지켜온 품목은 125종.
이들 대부분이 주력 농산물인 곡류와 양념채소류. 500% 이상 고율관세 품목만도 참깨 맥주보리 대추 녹두 잣 곡분류 등 십여종에 이르고, 대두와 전분(감자 고구마) 신선고구마 감자 마늘 옥수수 일반보리 맥아 메밀 꿀 땅콩 밤 등도 200~500%의 수입관세를 물리고 있다.
그런데도 평균관세율이 유지돼 온 것은 과실ㆍ버섯류(50%대)와 쇠고기(40%) 화훼(20~30%) 닭고기(20%) 등이 일찌감치 ‘매’를 맞고 관세를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농림부 WTO협상대책반 김종철 과장은 “고관세 품목 대부분이 농가 수나 농업생산 비중 면에서 주요 농산물에 해당된다”며 “세자릿 수 이상 관세를 적용받다가 급격히 관세를 낮추게 될 경우 그 파장은 한국 농업 전반에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현재 쌀에 국한된 정부 대책이 농업 종합대책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예산 등 정부부처와의 협의 채널이 시급하게 가동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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