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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P 리포트 / 샘표식품 박진선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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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P 리포트 / 샘표식품 박진선사장

입력
2002.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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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샘표식품 직원채용 과정에서 응시자 한명이 울면서 면접장을 나오는 불상사가 있었다. 사장과 일대일 면접을 보던 응시자가 사소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자 울음을 터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샘표식품 박진선(朴進善ㆍ52) 사장은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로는 드물게 철학자 출신이다.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유학 도중 ‘사람사는 길을 배우는 학문’에 매료돼 철학으로 노선을 바꾼 뒤 내친김에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부친 박승복(朴承復) 현 회장의 권유로 학문과 결별하고 회사를 물려받은 이후로 엄격한 직원채용 과정을 고집하는 것도 이 같은 이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바르고 정직한 구성원이 있어야 조직과 회사가 발전한다”면서 “계속되는 문답은 논리로 포장한 사이비 정직성을 가려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1990년 샘표식품에 합류할 당시에는 한가롭게 철학을 논하고 있을 처지가 못됐다. 창업 초기부터 마케팅에서는 가장 앞서 간다던 샘표식품에 마케팅부서는 온데간데 없고 매출은 몇 년째 정체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

최근 특허청이 샘표식품의 ‘샘(泉)표’를 국내 최고(最古)의 상표로 공인한 것처럼 1954년에 상표를 만들고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라는 국내 최초의 CM송으로 잘 알려진 회사가 더 이상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97년 사장에 취임하면서 마케팅 팀을 우선 부활하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20대 젊은층에게 간장과 된장 등 장류 제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신촌거리로 나가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장류 생산업체의 직원이 요리를 모르면 안된다”며 솔선수범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강습에도 뛰어다녔다. 지금도 샘표식품 직원은 정기적으로 요리강습을 받고있다.

‘굴뚝산업’치고는 과감한 투자도 했다. 이천공장을 간장생산으로는 세계최대 규모로 증설했고 지난해 250억원을 투자해 고추장ㆍ된장 생산라인으로 영동공장을 신설했다.

덕분에 간장을 주력제품으로 연 매출 약 1,000억원을 내는 중견기업으로 끌어올렸지만 박 사장은 아직 성에 차지않는다. 경쟁업체가 속속 등장하면서 내수시장의 확대에도 한계를 느낀다. “장류만 고집할 수도 없지만 여타 품목으로 영역을 넓혀 종합식품회사로 나가는 방법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그의 말에는 미래전략과 관련한 고민이 내포돼 있다.

박 사장이 갈림길에서 선택한 전략적 결론은 ‘우리 맛의 세계화’이고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 내세운 전술은 한국음식 레스토랑 설립이다. 첫 사업으로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미스터 김치’1호점을 세웠다.

매장에서는 한국교민이 아닌 외국인을 상대로 갈비, 불고기, 비빔밥 등의 우리 음식을 판매한다. 한국음식을 교두보로 세계시장에서 한국 맛을 알리기 시작하면 자연히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제품 판매도 늘어날 것으로 그는 확신한다. 그는 “이번달에 미국에 2호점을 여는 데 이어 세계에 500개 레스토랑을 세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부친의 권유를 뿌리쳤다면 박 사장은 학문연구에 정진하는 부부교수로 기억됐을 것이다. 수학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아주대 고계원(高季媛) 교수가 부인. 그러나 박 사장은 “공학의 문제해결 방식과 철학의 문제설정 기술을 경영에 접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간장을 팔던 철학자’가 세계시장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지 지켜볼 일이다. 박 사장의 철학전공은 과학적 인식을 탐구하는 과학철학이다.

김정곤가지

kimjk@hk.co.kr

■박진선 사장은 누구

▦1950년 서울 출생

▦1968년 경기고 졸업, 서울대 전자공학과 입학

▦1979년 미 스탠포드대 전자공학 석사

▦1986년 미 빌라노바대 철학과 강사

▦1988년 미 오하이오 주립대 철학 박사

▦1990년 샘표식품 기획이사

▦1997년 샘표식품 사장

▦고계원(高季媛ㆍ51)씨와 1남1녀.

■샘표식품은 어떤 회사

샘표식품은 1946년 창업주인 고 박규회(朴奎會)사장이 일본인이 경영하던 삼시장유양조장을 인수해 출범시킨 간장 제조업체로 국내 최장수 브랜드인 ‘샘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59년 도봉구 창동에 공장을 설립, 가정에서 담가먹는 것이 일반적이던 간장을 양산체제로 전환시켰다.

70년대 이후 고추장과 된장도 생산하고 수산물 및 과일 통조림, 면류, 차류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왔지만 주력제품은 역시 간장. 현재 간장시장에서 샘표식품이 51%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몽고, 삼화, 오복, 대상 등이 나머지 시장을 놓고 경합중이다.

지난해 영동공장을 완공하면서 연간 1만2,000톤의 된장과 고추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이 부문에서는 대상과 해찬들에 밀린다.

지난해 미국에 한국 음식점 ‘미스터 김치’를 오픈하면서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금까지는 주로 아시아지역과 미주지역 교민들을 상대로 장류제품을 수출해 2000년 실적이 64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5년 안에 수출실적을 연간 매출액의 2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매출 953억원을 달성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판관비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약점. 6월 결산법인으로 지난 회계연도 결산결과, 마케팅 비용의 증가로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95% 감소한 2억3,100만원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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