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자는 연간 2,500~2,800 시간 일한다. 세계 제일이다. 선진국보다 1,000시간 더 많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무려 연간 125일 이상 일을 더한다.왜? 그렇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임금이 낮고 임금 격차가 커서 그렇다. 일하다 하루에 8~10명씩 죽고, 그 이상의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직업병이 생기는 비밀이 거기에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임금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이 삭감된다면 이것은 삶의 질 개선이 아니라, 유지 혹은 악화이다.
그래서 임금보전을 노동시간 단축의 대원칙으로 합의한 바 있고, 이것은 국제적으로도 확립된 기준이다.
노동시간 단축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나누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로 일하는 시간이 줄어야 한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관련 제도를 개선해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휴일 및 휴가를 늘이며 잔업 및 휴일특근, 즉 초과노동시간을 줄이든가, 아니면 기존의 법령과 제도의 틀안에서 일을 적게 하고, 휴일과 휴가를 많이 쓰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뤄지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한 논의와 협상은 전자쪽에, 금융기관의 주 5일 근무제는 후자쪽에 속한다.
우리나라처럼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1%대로 낮고, 기업별 노동조합 조직처럼 노조의 힘이 약한 경우에는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실제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되면 주 5일 근무제로 이어진다. 쉬는 날과 지출은 늘어 나는데 임금이 줄어든다면 어떻게 실제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결국 임금보전 없이는 노동시간 단축은 무의미하다.
주5일 근무제 관련 협상이 제대로 안 되는 핵심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목적과 이를 위한 목표 및 수단이 잘못 설계되어 시간 단축과 관련이 없거나 역행하는 쟁점이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거부하는 사용자측의 간접적 의사표명이다. 생리휴가제의 무급화가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이들을 일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대원칙인 임금 보전 합의를 재계가 파기하고 있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것은 시간단축에 대한 직접적 거부의사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휴일·휴가의 생산적 활용을 통한 재충전과 능력개발, 노동의 집중과 노동의욕의 제고, 산업 조직의 개편과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정보화, 지식기반 사회에서 우리 사회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 사회의 질적 도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재계측에 발상의 전환과 획기적 결단을 촉구한다.
이정식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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