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에 동굴이 있다. 히틀러가 프랑스에서 약탈한 포도주를 모아둔 곳이다.”1928년산 살롱 샴페인, 샤토 라피트-로트실드, 샤토 무통-로트실드…. 1945년 5월 4일 프랑스 제2기갑사단 소속 드 노낭쿠르 중사는 자기 앞에 놓인 최고급의 포도주를 보고 전율했다.히틀러가 바바리아 알프스 지역 산꼭대기에 마련한 은신처 독수리둥지에서였다. 중사는 50만병의 포도주를 들것으로 내려 탱크와 트럭으로 옮겼다. 상상만 해도 오감을 황홀하게 만드는 이 소설 같은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프랑스에서 있던 일이다.
저자인 미국 컬럼니스트 클래드스트럽 부부는 지난해 출간한 이 책에서 부르고뉴, 보르도, 샹파뉴 등 포도주 가문 다섯 곳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프랑스 포도주가 겪은 제2차 세계대전을 들려준다. 전쟁과 포도주, 언뜻 상관없을 것 같은 주제가 흥미진진하게 하나로 얽힌다.
1939년 9월 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포도 재배자들의 현역 소집을 연기했고, 그들의 일손을 돕기 위해 오히려 군 병력의 일부를 포도밭으로 파견했다. 프랑스인들의 나치에 대한 저항은 이처럼 포도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스인은 모두가 하나 되어 전 국토에서 포도주를 사수했다. 그들은 막대한 양의 포도주를 독일군이 찾지 못하게 숨겼고 포도주의 등급에 대해 독일군을 속였으며 물 탄 포도주와 브랜디를 정복자에게 속여 팔았다.
포도주에 대해서 아무런 취미가 없었던 히틀러가 뒤늦게 포도주의 진가를 알고선 프랑스의 포도주 전문가들을 징발하고 최고급 포도주를 알프스 산맥의 은신처로 공수했다든지, 히틀러의 후계인 괴링이 ‘프랑스인의 위트와 쾌활함 그리고 행복’을 빼앗기 위해 포도주를 체계적으로 약탈했다는 역사적 사실만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당시 다섯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포도주 산업에 종사하던 프랑스인들에게 포도주란 삶 그 자체이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돈 클래드스트럽 부부 지음· 이충호 옮김 한길사 발행ㆍ1만2,000원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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