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나간 충동에 잇단 살인 비현실적 인물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 그려“지금껏 자신이 괴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까?”
우리 시대의 기인, 광인, 문학하는 거지. 소설가 이외수(57)씨가 ‘괴물’(전2권ㆍ해냄 발행)을 출간했다. ‘황금비늘’ 이후 5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괴물’은 살인 방화 도벽 섹스에 대한 엇나간 충동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애꾸눈 악한 전진철의 일대기다. 어렸을 때부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정한 행동을 저지르던 전진철은 성장해서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독침으로 사람들을 쏘아 죽이는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인다.
그가 죽이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을 현혹시키고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여럿 있다.
여기에다 황진이를 모델로 삼아 ‘고품격 기생’을 꿈꾸는 여자와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 전통 무예로 단련한 중국음식점 배달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극히 대중적이다. 작가는 “악(惡)으로써 악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간은 왜 악행을 저지르는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범행은 ‘전생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 복수하는 것’이라는 게 소설의 내용이다. 이 당혹스러운 설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작가는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 코살라국의 살인마 앙굴리말라의 이야기를 끼워넣는다.
999명을 잔인하게 죽이고 1,000번째 살인대상으로 석가모니를 택한 앙굴리말라에게서 작가의 주제의식을 찾을 수 있다. 이씨는 독자에게 앙굴리말라나 전진철 같은 악인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괴물’의 악마적인 전진철은 언뜻 이씨의 초기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1970년대 말 발표한 소설 ‘들개’와 ‘꿈꾸는 식물’ 등에서 일상 속에 숨겨진 마성을 그렸었다. 그때 그가 묘사한 주인공은 통제되지 않는 야성이 들끓는 인간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가 새롭게 만들어낸 ‘괴물’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새 소설에는 좀처럼 공감하기도, 연민을 갖기도 어려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괴물은 악한 주인공이냐고, 혹은 그 주인공에게 살해된 악한 사람들이냐고 묻는 질문에 작가는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말하자면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인물 묘사를 통해 인간이 누구나 내면에 품고 있는 악을 극도로 밀어붙인 셈이다.
독자들은 소설의 형식을 따라잡는데 애를 먹을지도 모르겠다. ‘괴물’은 화자와 시점이 모두 다른 81장으로 이뤄졌다. 단락별로 시점을 달리한 장도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81개의 실오라기를 한 올 한 올 엮어 한 장의 커다란 그림으로 탄생하는 조각보”라고 설명한다.
이외수씨는 일찍이 “소설을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행복을 위해서 쓴다. 내가 얻은 깨달음, 내가 얻은 아름다움을 독자와 공유하는 행복감 때문에 쓴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랑도 없다.” ‘괴물’에서 그가 전하는 깨달음은 살인마 앙굴리말라의 이야기에서 희미하게 찾아진다. 부처가 앙굴리말라에게 아직 한 번도 산 목숨을 죽인 적이 없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명했다.
그는 자신이 999명을 죽인 살인마가 아니냐고 물었다. 부처가 답했다. “도를 알기 전의 일은 전생의 일이니라.” 앙굴리말라는 평온해졌다. 그렇다면 연쇄살인 끝에 배달원에게 붙잡힌 전진철은?
작가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규정할 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독자가 그것을 ‘아름다운 깨달음’으로 받아들일 지는 알 수 없지만.
장편 ‘괴물’에서 내면의 욕망에 사로잡힌 극단적인 악인을 그린 이외수씨.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