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의 과열 뒤에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에 의해 도입취지가 무너진 청약통장제도가 버티고 있다.당초 무주택 서민의 주택마련을 돕기 위해 마련된 청약통장은 이제 고액의 프리미엄을 노리는 ‘복권’이 됐다. 정부는 서민뿐 아니라, 대부분 국민에게 이 복권을 허용했고 이에 따라 상당수의 청약통장 가입자들은 이른바 ‘자발적인 투기세력’에 가까워졌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6월 말 현재 459만3,373명. 이 중 1순위자는 166만5,379명으로 올해 1월말 96만5,395명에서 불과 5개월 만에 72.5%나 급증했다.
이는 곧바로 청약 경쟁률을 치솟게 만들어 이달 초 실시된 서울 7차 동시분양에서는 1순위 경쟁률이 168대1까지 치솟았다. 올해 7번 진행된 서울 동시분양의 평균 1순위 경쟁률은 71.1대1. 청약통장을 만들어 2년 동안 보유해 온 1순위자의 당첨확률이 불과 1.4%다.
청약통장의 범람은 청약통장의 불법거래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들고 있어봐야 분양받기도 힘드니 차라리 몇 백만원을 얹어주는 ‘떴다방’(이동 중개업소)이나 투기세력에게 통장을 넘겨주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통장거래가액이 향후 프리미엄을 예상하는 척도로 쓰일 정도로 분양현장에서 청약통장 거래가 일상화해 있다”며 “심한 곳은 청약자의 30% 가량이 통장을 사들인 경우”라고 말했다.
건설업체에서도 이 같은 구멍 뚫린 청약제도를 적극 활용해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다. 3순위는 청약통장이 필요없기 때문에 1, 2순위에서 미달이 발생하면 암암리에 떴다방을 동원, 대량으로 3순위 청약을 하도록 해 인기가 높은 것처럼 과장하는 식이다. 불법거래된 뒤 청약에 참여한 1, 2순위 통장도 인위적인 바람몰이에 큰 몫을 한다.
청약통장 변질의 ‘원죄’는 물불 못가리는 정부정책에 있다. 외환위기 직후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주택시장 규제를 풀어주는 바람에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닥터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2000년 3월 청약통장 가입기준을 20세 이상으로 완화, 사실상 온 국민에게 청약통장 문을 열어줘 통장의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며 “불과 2년 뒤에 벌어질 일조차 예상치 못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곽 이사는 “10년 넘게 청약통장을 간직해 온 사람과 내집마련 목적도 아니면서 온 가족 명의로 여러 개의 통장을 들고 있는 사람이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가입기간에 따른 가중치 등 실수요와 가수요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세중코리아 한광호 실장은 “청약통장 중 가장 도입취지가 덜 훼손된 청약저축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청약저축 대상 주택 공급을 늘리고 청약저축 가입자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 청약통장제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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