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9.29~10.14)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히자 대회기간 부산시내에 북한 인공기를 내걸어야 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일부 소장학자와 시민단체는 민족화합과 스포츠 정신을 고려해 부산시청 앞 국기광장을 비롯 주요 거리에 인공기를 게양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와 대치중이고 서해교전에 대한 사과가 없는 만큼 인공기 게양은 경기장 주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평화운동연합(총재 이수성) 장성호(張誠浩) 사무총장과 단국대 정용석(鄭鎔碩)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찬성 / 장성호 평화운동연합 사무총장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도시들은 참가국 국기를 거리에 내걸고 환영하는 것이 관례다. 인공기만 빼고 나머지 국기를 게양하면 차별이다.”
장성호 사무총장은 “이념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1972년 뮌헨올림픽 때에도 시내에 동독 국기가 내걸렸고 동ㆍ서독 경기에서 양국 국민들이 상대국 선수를 아낌없이 응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화합정신이 훗날 독일 통일의 기틀이 됐지만 당시 한국과 북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서로를 피해 그 모습이 오히려 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 법에 따르면 북한이 국가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지만 남북한 기본합의서(6ㆍ15선언)에 상호 체제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해교전에 대해 사과를 받아내는 문제는 아시안게임과 별개로 진행하면 된다는 것. 스포츠 행사를 정치와 연계 시킨다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아시안게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한국 브랜드가 상승해 득이 되는 쪽은 우리이므로 북한을 존중해 주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선수가 방한하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가 될 것이므로 국기 게양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1999년 농구스타 리명훈이 통일농구대회 참석차 서울에 왔을 때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것.
한걸음 나아가 북한 대표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즈를 구성해 대회 분위기를 고취시키고 남북화합을 다지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마산열린사회희망연대는 경남 서포터즈 계획안을 밝힌 상태다.
■반대 / 정용석 단국대 정외과 교수
“부산 시가지에 인공기가 나부끼면 이념적 혼란과 불안감이 고조될 것이다.”
정용석 교수는 우리 헌법이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고, 국가보안법에 인공기가 이적표현물로 규정돼있는 만큼 인공기 게양은 대회운영에 꼭 필요한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북한이 인공기 게양을 문제 삼아 대회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해야만 대회가 성공하느냐”고 반문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게임 때 북한이 불참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한국 브랜드를 높였다면서 북한 참가에 연연하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서해교전에 대해 분명히 사과한다면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인공기 게양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남북관계에서 아쉬운 쪽은 식량과 경제원조가 시급한 북한”이라면서 “이번 공동보도문에서 북한이 서해교전에 대해 여전히 ‘유감’표현으로 넘어가게 한 것은 우리 측이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년사이에 두차례 전투를 벌인 우리와 독일은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스포츠와 정치가 별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북한 체육계가 북한 노동당의 지시를 받고 있는 이상 정치현안과 연계 시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북한이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국내에 남아도는 쌀을 무상으로 얻어내고 반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협상이란 주고 받는 것이므로 우리도 받아내야 할 것은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과 국기게양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헌장 48조1항은 ‘모든 경기장 및 주변에는 참가 회원국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돼있지만 개최지 시가지에서의 국기게양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
현재 부산 범일동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건물과 시청 앞 국기광장의 국기게양대에는 북한 인공기가 걸리지 않은 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명칭만 붙어 있다. 조직위는 북한 선수들의 편의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원칙 아래 대한올림픽위원회(KOC), 통일부 등과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이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