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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63)羅雲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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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63)羅雲奎

입력
2002.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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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8월9일 영화인 나운규가 35세로 작고했다. 나운규의 호는 춘사(春史)다. 함북 회령 출신.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배우, 제작자를 겸했던 나운규는 한국의 초창기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민족해방운동에 직접 발을 담가 옥살이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 안에 강렬한 민족의식을 담아낸 항일 독립 투사이기도 했다.그의 요절은 아쉽지만, 해방과 분단을 보지 못하고 일찍 죽은 덕분에 나운규라는 이름은 남북한 양쪽에서 민족영화의 우뚝한 봉우리로 기억되고 있다.

사람들이 나운규라는 이름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은 ‘아리랑’일 것이다. 나운규는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1926년에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된 첫번째 ‘아리랑’은 나운규의 영화적 재능이 십분 발휘돼 그를 전국적 명사로 만든 작품이다.

기미 독립만세운동으로 투옥된 뒤 잔인한 고문을 받아 미치광이가 된 영진이 누이동생 영희를 겁탈하려는 악덕 지주이자 왜경 앞잡이 오기호를 낫으로 찔러죽이고 오랏줄에 묶여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이상숙(李上淑)이 부른 주제가 ‘아리랑’은 이 영화의 성공 이후 우리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구전 가요 아리랑은 가장 널리 알려진 본조(本調) 아리랑 외에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긴 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세상 등 서로 다른 곡조의 여러 노래가 전국에 퍼져 있다.

1936년에 발표된 ‘아리랑 제3편’은 처음으로 녹음 장치를 사용해 한국 영화가 무성시대에서 유성시대로 넘어가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나운규는 ‘아리랑’ 연작 이외에도 ‘벙어리 삼룡이’ ‘임자 없는 나룻배’ ‘강 건너 마을’ 등 20여 편의 영화에 감독이나 배우로 관여했다.

고종석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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