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오페라 ‘눈물많은 초인’(이인화 대본, 백병동 작곡)이 독재자 찬양이라는 논란 속에 8일 초연됐다.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이 오페라는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떠나, 작품성만 놓고 봐도 실망스럽다. 극적 요소를 갖추지 못한 엉성한 대본과 연습 부족이 역력해 보이는 부실한 무대는 한숨을 자아낸다.
박정희의 인간적 내면을 그린 ‘휴먼 오페라’라는 선전과 달리 인간 박정희는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만남과 헤어짐, 집권 후 경제개발과 유신을 다룬 이 작품에서 그의 됨됨이를 드러내는 입체적 심리묘사는 실종됐다.
박정희가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아내마저 총탄에 잃은 불행한 지도자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무엇을 희생했느냐는 설명을 생략,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극중 박정희는 유신을 비판하는 주한 미 대사에 맞서 이렇게 말한다. “이 땅의 빈곤을 몰아내고, 나라를 기반 위에 세울 때까지, 내가 삼켜야 할 고통을 모두 감당하리라.” 그런 박정희를 향해 극중 박태준은 ‘당신은 눈물 많은 초인’이라고 말한다.
개발독재를 옹호하고 영웅주의를 부추기는 듯한 위험한 논리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개막 전부터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일방적 미화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개막 첫날부터 공연에 항의하는 1인 시위에 들어갔다.
매일 공연 시작 전 1시간 동안 세종문화회관 매표소 앞에서 일제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두른 군복 차림의 박정희 인형을 등장시켜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를 조롱하고 있다.
제작자인 뉴서울오페라단(단장 홍지원)이 받게돼 있던 서울시의 무대공연 지원금 4,000만원도 취소됐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하겠다며 지원을 신청하고는 ‘눈물 많은 초인’으로 작품을 변경하자 서울시가 지급 결정을 취소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라간 이 작품은 창작지원제도의 허점까지 드러내주었다. 창작을 우선 지원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동안 이순신, 김 구, 안중근, 유관순, 전봉준 등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오페라가 지원금을 받아 제작됐다.
위인을 내세우면 기업이나 지자체 등에서 협찬이나 지원을 받기 쉬울 것이란 계산도 작용해 여러 민간 단체가 ‘위인전 오페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작으로 끝났다. 지원금을 노린 졸속 제작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작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소액 다건식 지원도 부실무대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원제도가 오히려 오페라를 망치고 있는 셈. 여기저기 찔끔찔끔 나눠주는 생색내기식 지원이 계속되는 한 이 같은 졸작 오페라 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래서 하나라도 제대로 된 작품, 제대로 제작할 수 있는 단체에 충분한 제작비를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