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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공주로키울까? 과학자로 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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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공주로키울까? 과학자로 키울까?

입력
2002.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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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요즘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딸 키우기 게임에 빠져있다. 하늘에서 내려준 열 살짜리 딸을 아버지(왜 어머니는 아니고!)의 입장에서 공들여 키워보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다른 것도 아니고 딸아이를 키워보는 것이라니 그래 네가 이 에미의 심정을 알렷다 싶어 모처럼 잔소리를 생략하고 어깨너머로 들여다 보았다. 웃음도 나고, 고개도 끄덕거려진다.

딸은 아버지가 어떤 계획 아래 어떤 프로그램으로 키우느냐에 따라 공주나 왕비에서부터 불량배, 사기꾼, 고급창부에 이르기까지 50여가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아버지의 직업도 아이의 장래에 영향을 주는 변수인데 상인, 몰락귀족(게임의 배경은 중세이다), 떠돌이, 방랑예술가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돈이 많은 상인을 선택하면 딸아이는 상당히 건방진 상태에서 성장을 시작한다.

이 건방짐은 공부나 집안일을 시키면 쉽게 해결된다. 그런데 몰락귀족의 딸은 건방짐의 뿌리가 아주 깊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켜도 잘 없어지지 않는다. 떠돌이나 방랑예술가의 딸이 비행소녀가 될 확률은 아주 높아서 그만큼 도전의 재미도 크단다.

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왕자와 결혼시켜 공주로 만들기가 제일 어렵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적절하게 시켜야 좋은 점수를 얻어 왕궁 근처에 접근할 수 있단다.

그래서 왕자와 마주칠 기회를 만들어주면 왕자가 말을 걸어온다나? 하지만 애를 써도 왕자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엔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단다.

처음엔 앗, 21세기의 주역이 될 둘째가 이러다 공주병에라도 걸리는 거 아니야 싶어 잔뜩 긴장하기도 했다. 백마 탄 왕자와의 결혼이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건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온 몸을 던져 증명한 바 있지 않은가.

“그래서 넌 니 딸을 공주로 키우고 싶어?” 넌지시 물어보니 “아니, 다른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그건 너무 어려워서 싫어”

과연 50여 가지 직업에는 재상, 영주 같은 정부관리부터 왕국박사, 연금술사 같은 과학자 계열, 작가, 화가, 무용가, 건축가 등 전문가 계열, 광산경영자, 금융가, 사채업자 등 사업가 계열이 망라되어 있다. 어둠 계열에는 암흑가의 보스, 불량배, 사기꾼에 마왕까지 있다.

한마디로 남자가 하는 모든 일은 여자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흠, 마음에 드는 군.

두 딸을 키우다 보니 별 것 아닌 데에도 신경을 곤두세울 때가 있다. 유치원에 다니던 큰 애가 “엄마, 의사는 남자가 하는거구, 간호사는 여자가 하는거지?”라는 질문을 던진 후부터 도진 증상이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에 반영된 여성 직업군이 이 정도라면 희망도 보이는 것 아닐까.

참고로 둘째의 딸아이는 어둠 계열인 암흑가의 보스로 자라났다. 무술을 열심히 시키고 도덕심을 제로 상태로 낮춰봤더니 그렇게 됐다나! /이덕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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