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냐, 외설이냐? 이 해묵은 화두는 2002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유와 견제 사이에는 늘 다른 주장과 시각과 가치관이 놓여있기 때문이다.70대 노인의 신혼생활을 그린 디지털 영화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가 7월23일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5월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쌍붙기’(원제 ‘동물의 번식’)에 이어 두번째.
■'죽어도 좋아' 계기로 재논란
영화인들은 즉각 반발했다. 영화인회의, 한국독립영화협회, 문화개혁시민연대는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이어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젊은영화비평집단도 문화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7일에는 문화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서울 인사아트플라자에서 ‘영화 ‘죽어도 좋아’ 제한상영등급, 타당한가’에 대한 난상토론까지 벌였다.
‘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가 등급결정은 단순히 이 영화가 그럴만한가 하는 문제만 던진 것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와 심의, 영화상영제도에 관한 문제점까지 드러냈다.
▲표현의 자유, 표현의 한계
영화단체들은 ‘제한상영가’는 이전의 ‘등급보류’ 결정과 다르지 않으며,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등급보류는 위헌”이라고 판시한 법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헌재가 등급보류로 영화상영을 제한하는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제시된 ‘제한상영가’ 역시 현실적으로 영화상영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명백히 법 정신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적 단체들 역시 “노인의 성생활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것이 국민정서에 어긋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참여연대의 장윤선 ‘참여사회’ 편집장은 7일 토론회에서 “제도의 너울을 쓰고 엄숙주의를 공고화하려는 기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영상물위원회의 설명은 “7분간의 성교장면에서 보여지는 성기노출이나 구강성교 등은 ‘18세 관람가’의 등급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부분이며, 준포르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영화인들은 또 선진국과 달리 폭력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성에는 지나치게 엄격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창서 영화인회의 사무국장은 “성과 폭력 코드로 점철된 ‘조폭마누라’가 ‘15세 관람가’인데 노인들의 성을 다룬 ‘죽어도 좋아’는 제한상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제한상영관 없는 제한상영가
제한상영가 등급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영화에 대한 사형선고. 그 등급의 영화를 상영할 공간, 즉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발효된 개정 영화진흥법은 일반극장에서의 상영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영화에까지 상영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제한상영관 설치를 허용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나도 하나도 생기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사’가 안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제한상영관은 이름만큼이나 제한이 많다. 장소, 광고, 비디오출시 등. 결국은 비현실적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국가가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원하듯 준포르노를 상영하는 극장을 지원할 수도 없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는 “이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유통의 자유 문제”라고 단정한다. 등급분류라는 법 자체를 인정하고, 등급을 신청한 뒤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오자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마케팅에 이를 이용하려는 속셈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현재로는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제한상영관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거나 상영을 포기하는 것.
다른 하나는 ‘18세 관람가’판으로 고치거나 따로 만드는 것. 임권택 감독이 더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자진해 ‘취화선’을 재편집해 ‘12세 관람가’ 판을 개봉하기로 했다는 것이 구체적 사례가 된 셈이다.
그러나 저예산(순제작비 3억원) 독립영화에 이같은 호사는 무리이다. 결국은 지금 상영하려면 감독이 기준에 맞게 자르든지, ‘표현의 자유’란 이름을 빌어 싸우든지, 둘 중 하나. ‘죽어도 좋아’는 10일 재심의를 요청한다.
▲세대, 단체 사이의 시각차
등급위원회 위원의 연령 구성도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죽어도 좋아’의 1차 등급심의에 참가했던 소위원회 위원 8명을 연령별로 보면 60대 전후가 5명, 30대 2명, 40대 1명. 60대 위원 5명 중 4명이 제한상영가, 나머지가 18세 관람가 의견을 냈다. 게임이나 음반 심의위원이 주로 30, 40대인데 비해 영화 쪽에 유독 고령자층이 많아 우리영화의 ‘보수화’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논리와 객관적 잣대 보다는 영화 관련단체는 무조건 영화 편을 들고,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음대협)이나 일부 종교 단체는 반대로 등급위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문제. 그것을 진보와 보수로 규정하고 서로 갈등만 빚는 것도 결국은 우리사회의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합리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다.
이대현기자leedh@hk.co.kr
박은주기자jupe@hk.co.kr
■'죽어도 좋아' 박진표 감독/ "노인은 性생활 못하나…인식의 벽 깨고 싶었다"
‘죽어도 좋아’의 주연인 박치규(73)와 이순예(71)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3월. 7쌍의 노인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랑’을 만들면서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세상의 많은 노인들을 위해, 당신들의 자랑스런 사랑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영화를 찍자”고 말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출연하기로 해 8월부터 촬영했다.
그들의 실제 정사장면이 왜 필요했느냐고 묻지 말라. 영화의 사랑 장면은 실제 장면에 가깝게 느끼게끔 찍으려 하면서, 실제 사랑 장면을 왜 넣었느냐고 묻는 데는 할 말이 없다. 노인들은 사랑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단단한 인식의 벽을 깨고 싶었다. 그건 그냥 ‘놀라움’이 아니다. 사회적 편견이 단단하고, 그 피해자인 노인들 역시 그 틀 안에 갇혀 있다.
관객들 반응은 나를 꽤나 고무시켰다. 영화를 본 관객이 수 천 명은 될 것이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성기 노출이나 오럴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건 영화 속에 묻혀 있다는 뜻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은 존재해야 하니까. 그러나 등급위에 영화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한 것같아 아쉽다. 한편 긍정적인 생각도 든다. ‘거짓말’이 만장일치로 등급보류 됐던 데 비해 찬성과 반대가 4대 4로 팽팽했다는 것은 자유로운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는 말이 아닐까.
어디에선가 “제한상영관에서라도 상영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관객들에게 심판을 받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영화는 이제 나의 손을 떠난 것같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관객들의 지지는 “타협하지 말라”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때문에 작품에 손을 대는 일(수정이나 삭제)은 상상하기 힘들다.
■영상물등급委 김수용 위원장/ "노인 性소재 문제보단 노골적 성묘사가 문제"
“젊은 사람이 출연하면 포르노고, 늙은 사람들이 나오면 예술이라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죽어도 좋아’가 칸영화제에 진출했다고는 하지만, 거기서도 소재 때문에 화제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원장 취임 초 ‘성기’ 노출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 그건 작품에 용해되는 경우에 한한 것이지 이처럼 노골적인 장면에 대한 것은 아니다.”
‘죽어도 좋아’의 제한등급 부여를 두고 김수용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은 “아직은 재심이 청구되지 않은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작품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_등급위원회가 작품성을 심사하는 기관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이 문제인가.
“화면에 노골적인 섹스장면이 나오고 음모와 성기, 구강성교를 하는 할머니의 이까지 확연히 보이는 것은 준포르노라고 규정할 수 있다.”
_외화의 경우 구강성교는 흔히 나온다. 우리나라 작품에 더 까다로운 것은 아닌가.
“외화에 대한 기준도 마찬가지다. 외화의 경우 카메라를 돌려 암시한다거나, 조도를 낮춰 식별이 불가능하다.”
_제한상영관이 없는데 제한상영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상영제한 아닌가.
“위원회는 존재하는 등급에 따라 등급을 부여할 뿐이다. 상영관의 유무는 위원회의 소관이 아니며, 위원회가 영화의 유통에 관해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
심의위원이 너무 보수적인 층으로 구성된 것은 아닌가.
“30대부터 60대까지 8명의 위원이 토론했고 4대4로 의견이 갈렸다. 소위원회 위원장의 직권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위원들의 성향이 이전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_각계에서 압력이 많겠다.
“이 영화가 상영되면 음란물 유포로 제작자와 등급위원회를 형사고발하겠다는 말까지 들린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압력을 느끼지는 않는다. 우리는 프린트만 엄밀히 판단할 뿐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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