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금보험공사가 6개 공적자금투입 은행에 부실여신을 초래한 임직원을 상대로 1조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도록 요구하면서 은행권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은행 입장에선 동고동락했던 선배들에게 과거의 책임을 물어 전재산을 몰수하는 손배소를 제기하는 것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고의나 불법이 아닌 ‘결과적 과실’에 대해 이처럼 가혹한 응징을 한다는 게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날리게 생긴 전직 임직원들의 심정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의 낭비를 초래한 책임자를 가려내 책임을 따지는 일은 국민정서나 재발방지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다.
또 환란→공적자금 투입→부실책임 추궁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금융기관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왜곡된 금융시스템이 상당부분 정상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환란을 거치면서 드러난 거대한 금융부실을 단순히 은행원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몇몇 사람을 혼내주는 것이 일단 보기에 시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통하고 관치금융이 합리적 경영판단을 방해하던 시대,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환란 전의 왜곡된 금융관행이 몰고온 결과를 극소수 은행원 탓으로만 호도하는 것은 공적자금 논란의 깔끔한 뒷마무리가 될 수 없다.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마녀사냥식 책임추궁’은 정작 더 큰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동일 뿐이다.
이미 은행권에는 추후 부실발생에 따른 덤터기를 쓰지않기 위한 보신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기업의 향후 생존가능성이나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안중에도 없이 책임회피를 위해 무조건 ‘대출불가’를 외치는 은행원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부실에 대한 잘못된 책임 추궁이 또다른 금융시스템의 왜곡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 지 에 대한 성찰은 책임추궁보다 더욱 중요하다.
남대희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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