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풍(死風)의 시샘인가. 맥없이 소멸하는 듯 했던 12호 태풍 ‘간무리’(일본어로왕관이라는 뜻)가 명을 다한 이후 한반도에 엄청난 비를 몰고오고 있다. 간무리가 남긴 ‘열대성 저압부’가 6~7일 전국에 걸쳐 많은 곳은 300㎜가 넘는 폭우를 쏟아내고 있는 것.기상청은 “‘간무리’가 소멸되면서 변질된 열대성 저압부가 중국 양쯔강(揚子江) 유역으로 몰려가 대규모 구름대를 발달시켜 한반도로 공급하고 ”고 말했다.
그러나 간무리는 엄청난 영향력과는 달리 단명에 그쳤다. 4일 오전 대만 남서쪽 해상에서 소형태풍으로 탄생해 한때 중형급으로 커졌으나 6일 중국 화남지방 내륙에 상륙하면서 소멸됐다. 불과 48시간만에 짧은 생을 마친 것. 더욱이 소멸지점은 한반도로부터 약 1,600km나 떨어진 홍콩 북동쪽. 평상대로라면 소형태풍으로선 한반도에 바람 한 점 영향을 기치기 어려운 먼 곳다.
보통 서태평양에서 북동진해 동해로 빠지는 8월 태풍의 진로를 크게 벗어나 북서진해 곧장 내륙으로 직행한 것도 특이한 점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8월 발생 태풍치고 진로도 특이할 뿐더러 먼 곳에서 소멸된 뒤에 이렇게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흔치 않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집중호우는 한반도 주변 기압배치의 영향도 있지만 간무리의 열대성 저압부가 큰 영향을 준 것"이라며 "마치 간무리가 장마를 다시 불러온 형국"이라고 말했다. 사풍이 장마로 부활한 셈이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