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때 외국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고궁의 수문장 교대식이었다고 한다.헌칠한 용모에 의젓한 장병들의 보무당당한 행렬을 보노라면, 우리도 쉽게 눈길을 떼지 못한다. 교대식이 진기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현재 서울에서는 덕수궁과 창덕궁, 경복궁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하고 있다. 볼거리가 부족한 나라에서 옛 복식과 군례에 맞춰 수문장 교대식을 재현해 낸 열정과 노력이 장하다. 수문장 교대식은 1996년 덕수궁에서 시작돼 반응이 좋자 지난해 창덕궁과 경복궁으로 확대됐다.
■ 관광객이 함께 사진 찍기는 좋아도, 요즘 같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염천에 수문장으로 출연하는 젊은이들의 고생은 자심하다. 전통 군모에 군복을 겹겹이 갖춰 입고 장화까지 신고 무기를 들고 있으면, 옷 속으로 땀이 줄줄 흐른다. 모두 땀띠 투성이가 된다고 한다.
때문에 경복궁의 경우 혹서기에는 근무자를 입직(立職) 8명씩으로 대폭 줄이기도 했다. 교대식의 고증을 맡았던 심승구씨는 ‘수문장의 엄격한 궁성문 개폐와 교대 절차는 조선시대 왕실호위 문화의 정수’라고 말한다.
■ 경복궁 수문장과 수문군을 새로 모집하고 있는데, 자격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키 180㎝ 전후의 젊은이로 군 전통의장대 출신이나 태껸기능자를 가장 우대하고, 다음 일반 전역자와 병역미필자 순으로 대우한다. 차등을 두는 것은 직무가 고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때 많은 국내외 언론이 호평을 한 후, 경복궁은 7월초 이를 보려는 외국관광객이 하루 평균 6,300명에 이르렀다. 덕수궁과 창경궁 역시 이를 위한 관광객이 종전의 3배 가량 늘었다.
■ 세계에서 유사한 의식을 하는 곳은 버킹엄궁이 유명하다. 영국왕이 상주하는 이 궁에서 매일 몇 차례 시행되는 전통적 근위병 교대식은 런던관광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우리도 옛 수문장 교대식을 다듬어 오늘을 위한 관광의 보석으로 만들었다. 다른 나라가 이런 교대식을 상설화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보완해야 할 점도 많지만, 특히 안쓰러운 것은 각 궁의 정문 앞이 행사를 하기에 너무 비좁다는 점이다. 시청 앞 공원조성이 논의되는 마당에, 우선 덕수궁 대한문 앞이라도 더 넓혔으면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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