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전국 13개 지역에서 국회의원 재보선이 실시된다. 선거는 민주주의 축제의 장이라고 하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 선거가 끝나고 나면 신당이라는 기치 아래 또 한번의 경선 불복과 정당 이합집산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상황은 97년과 아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선을 준비하고 있음에 반하여, 여당에서는 경선으로 후보를 확정한지 두 달도 안 돼 인기하락을 이유로 후보 교체론이 나오고 있으며, 결국에는 분당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경선 불복 사태가 특히 여당에서 반복되는 것일까.
후보자 자신들이 그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고, 그것을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는 반대 진영의 흔들기가 먹혀 들어간 측면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선 환경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후보자에게 매우 열악하다는 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경우 실질적인 민주적 경선이 일어나는 곳은 여당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제도적인 요인과 권력누수를 원치 않는 현직 대통령이 당을 틀어쥐고 있다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서야 놓아주는 현실이 맞물려 대선 직전에 실질적인 경선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실질적 경선을 통과한 후보자가 당을 장악할 수도, 장악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이미 당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 후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후보가 당을 장악하지 않으면, 효율적인 선거를 치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치관계법은 철저하게 정당 중심의 선거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치르는데 있어서는 조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을 가동하고 정책개발과 홍보에 필요한 돈인데, 우리의 정치자금법 아래서는 대통령후보가 정당을 업지 않고는 떳떳한 돈을 구할 수 없다.
후원회를 결성할 수 없으므로 공식적으로 후원금을 모을 수도 없으며, 대선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 역시 후보가 아니라 정당에 주어진다. 따라서 후보는 당을 장악하여야만 선거전을 치르는데 필요한 실탄을 공급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보가 당을 장악하려 들면, 경선 탈락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자신의 정치미래를 불안하게 여기게 된다. 이들은 앉아서 죽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제 살길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것이 결국 후보 교체론과 분당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적전분열한 여당의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하게 된다.
민주적 경선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후보에게는 당을 장악하지 않아도 효과적인 선거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 줘야 하며, 경선 탈락자와 그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경선에서 지고 난 이후에도 정치생명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대통령 후보 경선제의 전형을 제공한 미국에서는 후보 교체론이나 신당 창당론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철저하게 각자의 몫을 보장해주는 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통령 선거는 전액 국고로 보조하고 있는데, 그 자금은 정당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보에게 주어진다.
이 돈으로 후보가 되자마자 중앙당 내가 아니라 후보 개인의 참모 진영을 중심으로 선거본부를 만든다. 또 선거운동 역시 당 조직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와 각종 사회ㆍ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후보는 당을 장악하기 위한 이전투구를 벌일 필요가 없다.
동시에 각종 공직 후보에 대한 공천이 중앙당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예비선거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경선 탈락자나 그 지지자들은 경선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살길을 찾아 보따리를 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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