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거는 조기ㆍ과열 선거다.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선거다. 정당의 목표가 정권획득이라지만 이 정당들의 한 가지 한 가지가 너무 선거지향적이라서 본래적 의미의 정치는 오래 전에 잊혀졌다. 그걸 당연한 듯 여길 정도로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학습’돼 있다.정치에 조기 선거판이 벌어진지도 한 해는 족히 되는 것 같다. 대통령 후보가 다른 때보다 일찍 정해지는 바람에 만사의 선거화 경향도 재촉됐다.
우리 풍토에서 정권교체가 사회 전체에 어떤 폭풍을 불러오는지를 경험해 본 탓에 정권의 재교체 여부가 달린 이번 대통령선거는 사회 제세력 간 첨예한 이해다툼이 될 것임을 다 알고 있다.
이 선거가 논쟁과 반론, 설득과 이해의 경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증오의 싸움판으로 전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도 사실 다 알고 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놓고 벌어지는 작금의 쟁투는 그 동안 줄기차게 이어져온 싸움판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다. 폭로와 반박, 정황과 의혹이 내용물이다.
5년 전에 이미 끝난 스토리를 되살리려 한다는 한나라당의 반발은 심정적으로 이해 받을 수 있지만 유력한 반대정파가 이 문제로 다시 경쟁하자고 나선 판에는 외면한다고 피해질 일이 아니다. 이 판은 그런 판이고, 그런 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함께 만들고 키워왔다.
이 판의 그런 규칙을 같이 만들어 왔던 만큼 그 속에서 경쟁하고 입증할 도리 밖에 없다. 두 당 중 한 쪽은 이기지 않으면 져야만 한다. 선거를 넉 달 앞두고 양측은 최대 승부처에서 부딪쳐 있다. 이유는 지난 번 선거 때 민심이 택한 무서운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정치권의 다툼은 수사에만 맡길 수 없을 만큼 절박하고 조급하다.
싸움의 결말은 중요하다. 정치권 최대의 공론이 돼 버린 마당에 해당 정당에 대한 결정적 판정이 되기 때문이다. 자세히 관찰하고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예단할 필요는 없다.
될 일은 되는대로, 안될 일은 안되는 대로 지켜보고 다룰 일이다. 결단 날 싸움에서 무서운 것은 진실이고, 주장은 책임질 일이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이는 최근에 남겨진 한 교훈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장상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부결에서 찾을 수 있는 작지않은 의미이다.
여성총리 탄생이 좌절된 안타까움 역시 분명하지만 못지않게 중시해야 할 것은 세상의 순리와 민심의 잣대가 공평하다는 점이다. 임명안 부결을 두고 의원들 스스로가 놀라고, 언론이 놀랐지만 일반여론은 이미 결론을 내고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안될 일을 두고서 이모 저모의 다른 이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정치권이고 언론이었던 셈이다.
병역문제 공방은 결말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공방 과정 자체는 이미 선거운동이다. 득표요인과 감표요인이 그 과정에 다 담겨있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선거운동을 관찰하고 판단을 내리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도 될 수 있다.
어차피 이런 판을 놓고 결정과 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이 판의 규칙을 나름으로 해석해 가며 정ㆍ부당을 따져볼 도리 밖에 없다. 구태여 정책대결만이 따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수도 있다.
나머지 넉 달이라고 해서 선의의 경쟁을 펴는 장면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싸움을 지켜보는 특별한 노우 하우를 습득해야만 하는 게 이번 선거일 것 같다.
조재용 정치부장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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