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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 있는 아름다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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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 있는 아름다운 숲길

입력
2002.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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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숲이 그립다. 숲 속에는 여름이 들지 않는다. 훅훅 한숨을 토하게 하는 열기도 숲 속에 이르면 상냥해진다. 나무와 풀이 내뿜는 진한 향기가 그 서늘한 기운에 맛을 더해준다.숲, 그 중에서도 길이 있는 숲을 찾아간다. 발걸음따라 냇물이 함께 졸졸거리면 더욱 행복하겠다. 고단한 발을 찬 물 속에 담그고 작열하는 태양이 식어갈 가을을 그려본다.

● 보석사길(충남 금산군)

금산은 대표적인 인삼 산지이다. 지금은 과거의 권위를 내세울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인삼 유통의 70~80%가 이루어진다.

인삼의 이미지에 가려 금산의 속살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금산은 빼어난 풍광과 의미 깊은 유적이 즐비한 여행 명소이다.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해발 737m)은 금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산이다.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울창한 숲과 기암괴봉,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밀도있는 산이다. 진악산 기슭에 보석처럼 빛나는 사찰이 있다.

말 그대로 보석사(寶石寺)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이다.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절이다. 그러나 역사적 무게는 만만치 않다. 신라 헌강왕 11년(885년) 조구대사가 창건했다.

한창 때에는 500여 명의 승려가 수련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입구에서 절에 이르는 길이다. 전나무를 비롯해 각종 활엽수가 길 양쪽에 도열해 있다. 어린 나무가 아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아름드리 나무들이다.

절 입구에 들면 일주문과 만난다.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는 없지만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일주문 건너편으로 400여m 절까지 이르는 길이 나타난다. 길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울창한 숲이다. 나무 바깥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짧은 길이지만 아름답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리를 타고 계곡을 건너면 보석사이다. 대웅전, 산신각, 의선각, 조사장, 응향각, 요사채 등 건물이 단출하다.

절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는 곳에 거대한 나무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이다.

조구대사가 제자 5명과 함께 6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들이 모두 한 몸이 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둘레가10.4m, 높이가 40m에 이른다. 바람에 날리는 연기처럼 하늘을 향해 가지를 풀어헤친 모습이 장관이다.

이 나무는 영물이다. 나라의 큰 경사나 재앙이 닥치면 바람을 맞으며 운다고 한다. 금산군청 문화공보관광과 (041)750-2225

●문경새재 옛길(경북 문경시)

문경새재(경북 문경시)는 서울과 영남을 잇는 길이었다. 조령산과 주흘산이라는 백두대간의 가파른 두 봉우리 사이로 난 길이다. ‘영남’이라는 말은 바로 ‘새재(조령ㆍ鳥嶺)의 남쪽 지방’이란 뜻이다. 사람은 물론 물산이 모두 이 고개를 넘어 서울과 영남을 오갔다.

새재는 조선 태종이 개척한 길이다. 고개를 사이에 두고 낙동강과 한강의 물줄기가 흐른다. 고개를 넘은 사람과 산물은 바로 배에 실려 굽이굽이 물을 타고 서울로, 영남 각지로 운반됐다.

일제가 서울로 쉽게 들어가기 위해 1926년 이화령이라는 신작로를 옆에 만들며 새재는 옛길이 됐고, 2년 전 이화령고개를 관통하는 터널이 생기면서 새재는 ‘원조 옛길’이 됐다.

옛길 입구부터 충북 충주시와의 경계에 서있는 제3관문까지 왕복 약 14㎞가 울창한 숲길이다. 조금 긴 산보로 생각하면 된다.

천천히 거닐며 흙기운과 나무향기에 취해봄 직하다. 매표소에서 약 500m를 걸으면 성곽과 문이 보인다.

제1관문인 주흘관이다. 세 개의 관문 중 제 모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다. 낯이 익다. KBS드라마 ‘태조 왕건’등 많은 사극의 배경 장면으로 등장하는 문이다.

주흘관을 지나 왼쪽의 왕건 촬영장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이다. 산길이라지만 차가 두 대 정도 교행할 수 있는 넓고 평탄한 길이다.

단풍나무, 박달나무, 은행나무, 전나무 등 각종 나무의 가지가 길을 지붕처럼 덮고 있다. 풀냄새, 나무냄새가 가득하다. 색깔이 진하다. 이마에 땀이 조금 맺힐 무렵,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조곡폭포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떨어지는 조곡폭포는 3단 폭포이다. 길 옆에 바로 있기 때문에 숲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물소리를 뒤로 하고 잠시만 걸으면 제2관문인 조곡관이다. 관문 바로 뒤에 샘물이 있다. 앉아서 목을 축이고 땀을 식힌다.

조곡관에서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의 길은 지나온 길보다 조금 가파르고 지루하다. 약 3.5㎞로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나 고갯마루의 성곽에 올라 조망하는 시원한 풍광이 보답이 된다. 남북으로 늘어선 연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새재관리사무소 (054)571-0709

●선암사길(전남 순천시)

선암사(仙巖寺)는 전남도립공원인 조계산(884m)에 있는 대찰이다. 조계종 다음으로 국내에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백제 성왕 시절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비로암 자리에 신라말 도선국사가 큰 절을 일으켰다.

산 반대편 기슭에는 조계종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등을 대고 자리한 송광사가 번화한 반면 선암사는 고적하고 은근한 멋이 있다.

사하촌(寺下村) 괴목마을에서 절까지 이르는 약 1.5㎞의 길이 아름답다. 자동차로 오르는 관광객들도 있는데 선암사의 중요한 대목을 놓치는 사람들이다. 가지를 뒤튼 활엽수의 숲으로 길은 나아간다. 왼편의 계곡으로 물소리가 걸음과 함께 한다.

이 길은 자연이 스스로 만든 수목원이다.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말채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금식나무…. 이름조차 낯선 나무들도 많다. 친절하게 나무마다 이름표와 소갯말을 걸어 놓았다.

얼마 못 가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숲과 만난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직립의 아름다움. 광장과 식수대가 있고 삼나무 아래 깊은 그늘 속에 벤치가 놓여있다. 잠시 걸음을 쉰다.

쉼터에서 조금 오르면 두 개의 돌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높은 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승선교(昇仙橋). 자연석을 기반으로 화강암을 무지개처럼 이어놓았다.

300년 가까운 세월, 폭우와 급류를 맞으면서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보물 제400호이다. 바로 위에 강선루(降仙樓)가 있다. 붉은 색 기둥이 돌다리와 잘 어울린다. 조계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061)754-6341

●삼나무길(제주 북제주군)

제주도에는 육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특이한 풍광이 많다. 태평양의 정기를 정면에서 받는 지리적인 이유와 화산섬이라는 독특한 땅의 성질 때문이리라. 그 중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삼나무숲이다.

삼나무는 일본 남쪽 지역에 많은 나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뻗는 모습이 마치 로마시대 신전의 기둥과 같다.

제주에서 삼나무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1112번 도로. 한라산 동쪽 기슭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1118번 도로와 만나는 교래 사거리 인근에 삼나무가 밀집해 있다. 도로 양쪽으로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삼나무가 도열해 있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해도 좋지만 차를 세워놓고 걷는 맛이 일품이다. 단순히 길 옆에만 심어져 있는 가로수라고 생각했는데 그 숲이 꽤 깊다. 길을 내고 삼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삼나무 숲을 가로질러 길을 낸 것이다.

‘이재수의 난’ ‘연풍연가’에 등장하는 삼나무숲을 보려면 아부오름에 가야 한다. 평범한 오름이었던 아부오름은 영화의 배경지가 되면서 갑자기 세상에 알려졌다.

높이 50m가 넘는 삼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빽빽이 들어차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이 삼나무 길은 중간 지점에 양 옆으로 각 100m 길이의 길이 나 있어 마치 열십자(+)모양을 하고 있다.

삼나무 길을 지나 만나게 되는 아부오름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색적인 풍광. 분화구 주변이 넓게 퍼진 형상이다. 10여분을 걸어 정상 분화구에 서면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아련하게 보이고, 뒤로는 한라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오름 안으로 시선을 옮기면 더욱 이채롭다. 분화구의 동그란 흔적을 따라 삼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부오름과 삼나무 숲길은 도로 안쪽에 있어 초행길의 여행객은 쉽게 지나치기 쉽다. 북제주군청 관광교통과 (064)741-0580

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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