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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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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 취재 여행을 떠났습니다. 태백산에 오를 예정이었습니다. 평소처럼 평일에 떠나는 여정이라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중부-영동-중앙고속도로를 차례로 타고 제천까지 간 후, 영월을 거쳐 태백에 간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별 문제가 없다면 4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길입니다. 제천에서 영월에 이르는 길은 경치가 빼어납니다. 녹음이 우거져 있을 그 길을 달릴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천호대교가 가까워오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디서 쏟아졌는지 갑자기 차가 넘쳤습니다. 교통방송을 틀었습니다. 남북과 동서를 잇는 모든 고속도로가 정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수첩을 열어 달력을 봤습니다. 8월 1일. 순간 스스로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석과 설날을 제외하고 가장 교통량이 많은 날이 바로 8월 1일입니다. 여름 휴가의 정점입니다.

나선 길을 되돌리기도 뭐해서 그냥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포기하고 국도, 지방도로 심지어 논밭 사잇길까지 달려 겨우 태백산에 도착했습니다.

밤 11시 30분, 13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지쳐서 빨리 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안이한 생각이었습니다.

태백산 주변에는 남아있는 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내까지 뒤져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속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차장에 있는 차는 한두 대가 아니었습니다. 100대는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차에 사람이 들어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숙소를 정하지 못한 여행객들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코흘리개 아이도, 심지어 칭얼대는 젖먹이를 달래는 엄마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준비성이 부족한 가장 덕분에 휴가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원, 돌격 앞으로’ 식의 우리 휴가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습니다.

한쪽에서 부부싸움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러게 그냥 집에서 쉬자니까!” “1년에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뿐인 휴간데, 매일 집에 있는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아?”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서야 하는 우리의 모습. 서글펐습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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