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주목한 한국영화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와 트랜스젠더 록가수의 이야기를 그린 ‘헤드윅’(감독 존 카메론 미셸)가 등급으로 희비가 엇갈렸다.‘죽어도 좋아’의 ‘새로운 시각’이란 노인들의 매우 왕성한 성적 욕망을 그려냈다는 것. 그래서 화제도 많았고, 비난도 없지는 않았다.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지난달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18세 이상이 보기에도 문제가 있으니 아직 이 나라에는 없는 제한상영관에서나 나중에 틀라는 것이다. 감독은 등급을 위해 필름을 삭제할 생각이 없어 23일 재심을 청구키로 했다.
‘헤드윅’은 가장 널리 알려진 컬트영화의 ‘록키 호러 픽쳐쇼’와 비견될 만큼 춤과 노래가 흥겹다.
원제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성난 1인치)’가 말해주듯 헤드윅이 성전환을 위해 성기를 절단하고 나체로 일광욕을 하다 미군 병사를 만나게 되는 등의 장면으로 수입사는 당연히 ‘18세 관람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혹시나”하는 기대와 등급위원들의 권유로 15세 관람가로 신청했고, 무난히 그 등급을 받았다.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정체성을 다룬 영화의 내용을 인정해 준 것 같다”는 게 수입사의 설명.
그렇다면 ‘죽어도 좋아’는 보편성과 정체성을 다루지 못했다는 얘기인가? 제한상영가 등급은 ‘기계적 적용’ 때문이다. ‘헤드윅’은 나체가 나와도 뒷모습이며, ‘성난 1인치’라고 표현할 뿐 구체적으로 특정 부위를 언급하지 않는다.
반면 ‘죽어도 좋아’에는 성기와 오럴섹스가 구체적으로 나오기 때문. 폰 테이프로, 극장에서 두 번 봤지만 어두운 디지털 화면으로는 두 사람의 형체 외에 구체적 물증(?)은 잘 보이지도 않은 데도 말이다.
문제는 ‘기계적’인 적용에도 ‘차별’이 있다는 것. 웨인왕 감독의 ‘센터 오브 더 월드’는 사탕으로 장난을 치는 더 민망한 장면이 있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없었다. 혹시 이런 영화를 한국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 배우가 출연했다면?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등급위원을 지낸 A씨는 특정한(대부분 성적) 행위를 하는 주체가 한국인이냐, 아니냐가 영화를 보는 시각에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한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큰 문제다. 우리영화에 더 ‘정숙한(?)’ 표현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역차별이기 때문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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