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후 일본의 히로히토(裕仁) 천황(1901~1989)과 연합국군총사령부(GHQ)의 더글러스 맥아더 및 매튜 리지웨이 총사령관가 가졌던 회동 내용을 낱낱이 기록한 수기가 5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보도됐다.400자 원고지 246장 분량의 수기는 전후 일본 및 동북아 관계사의 공백을 메울 귀중한 자료가 된다. 수기에는 특히 히로히토가 한반도에서의 공산주의의 위협을 강조하며 맥아더과 공감을 이뤘고, 미군이 지역에 항구적으로 주둔할 필요성이 논의됐던 사실이 담겨있다.
수기는 당시 히로히토의 통역으로 회견에 참여했던 외무성 관료 마쓰이 아키라(松井 明ㆍ1994년 사망)씨가 1980년 ‘천황의 통역’이란 제목으로 남긴 것이다.
이에 따르면 쇼와 천황은 51년 4월 맥아더가 파면된 뒤 가진 마지막 회동에서 “전쟁재판에 대해 사령관께 사의를 표한다”면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자신이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은 데 대해 감사했다.
이에 대해 맥아더는 “워싱턴으로부터 ‘천황재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물론 반대했다”고 밝혔다.
이는 맥아더가 천황에 대한 재판을 주장했던 영국과 소련에 반대해 천황이 불기소 처분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5월 천황은 맥아더의 후임인 리지웨이와의 회견에서 “유엔군의 사기나 제공권은 어떤가” “소련이 직접 개입할 징후는 없나” 등 전황에 대해 상세히 질문했다.
그는 특히 “미군은 원자무기를 사용할 생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대해 리지웨이는 “원자무기 사용 권한은 미 대통령에게만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앞서 49년 11월 맥아더와 만난 자리에서 히로히토는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사상의 침투와 한국에 대한 침략 등으로 일본 국민이 동요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 우려된다”고 한국전쟁을 예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맥아더는 “미국은 공백상태에 놓인 일본을 침략에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년간 영ㆍ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미군 계속 주둔 가능성을 밝혔다.
히로히토가 이처럼 공산주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일본의 국체(國體)로서 천황제를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풀이된다.
히로히토와 맥아더 및 리지웨이와의 회견은 1945년 9월~1952년 5월까지 모두 18차례나 이루어졌다. 특히 그는 당시 국내외 정세를 숙지하고 미국측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음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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