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100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마을로 축소시켜놓은 한 환경학자의 칼럼이 화제가 되고 있다.수십 억의 인구를 단 100명으로 줄인다면,과연 인종간의 비율은 어떻게 될까?정답은 70명의 유색인종과 30명의 백인이다.30명의 백인,그러나 그들은 숫자와는 무관하게 그 마을의 명실상부한 지배자이다.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을까?그것은 그들의 '문명'이 문화의 유일한 척도이기 때문이다.서구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화만을 유일한 척도로 간주했다.그러나 이제 이러한 백인의 척도는 우리의 삶의 척도이기도 하다.중세는 물론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서구인의 눈에는 유색인종,특히 인디언들은 야만인의 형상으로 비춰진다.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뎟을 때,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정복자들이 앞다투어 식민지 개척에 나섰을 때,그들은 곳곳에서 인디언들과 마주쳐야 했다.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척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모든 원주민들을 가리켜'야만인'이라고 명명했다."모든 야만인은 무척 흉폭하고 탐욕스러우며,특히 식인풍습이 그것을 증명해준다."17세기의 서구인들이 원주민들에 대해 갖고 있던 관념의 대부분은 이런 선입견들로 가득 찬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대표적 철학자인 몽테뉴(1533~1592년)는 '수상록'에서 자신이 살았던 16세기 서구인들이 갖고 있던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을 맹렬하게 통박했다.그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구적 무화의 폭력성을 비판한 이유는 종교재판 때문이었다.몽테뉴가 살았던 16세기 중반의 프랑스느 신구 세력간의 종교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보르도 지역의 시장과 법관까지 지낸 그가 '수상록'을 쓴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그는 원주민들이 식인의 풍습을 지녔기 때문에 야만인일 수밖에 없다는 서구적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그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먹는 것이 야만인의 유일한 증거라면,종교라는 거룩한 이름아래 '마녀사냥'을 즐기는 서구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야만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나는 산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사람을 죽여서 먹는것보다 더 야만이라고 본다.아직도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신체를 고문과 고형으로 찢고 조금씩 불에 굽고,개와 돼지에게 물어뜯어 죽이게 하는 일이(우리는 이런 일을 글에서 읽었을 뿐 아니라 생생하게 우리 눈으로 보았고,그것은 옛날의 적들 사이가 아니라 우리 이웃 사람들,같은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났으며,더 나쁜 일로는 종교의 경건한 신앙심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사람을 죽인 뒤에 구워먹는 것보다 더 야만스런 행동이라고 본다."('식인종에 대하여')
그는 서구인들이 원주민을 가리켜'야만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부패하고 타락한 서구적 취미로만 그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이것은 결국 원주민들의 삶이 야만이 아니라,서구인들의 시선 자체가 야만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몽테뉴는 사람들이 야만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들에게서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 삶의 형태를 발견했다.놀라운 사실은 이런 얘기가 종교재판은 물론 종교적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씌어졌다는 사실이다.실제로 그는 '수상록'때문에 구교 세력에게 테러를 당하고,바스티유에 투옥되기도 했다.
'수상'이란 자기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다.'크세주(나는 무엇을알고 있는가)'라는 말이 입증하듯,그는 거짓과 폭력이 횡행하는 자신의 사회를 지식의 법정에 세운 철학자이다.이러한 그의 태도에는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타인을 볼 수 있다는 자기비판의 정신이 깔려 있다.지식인,그것은 자신을 정직하게 볼 줄 아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봉준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연구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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