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고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검정위원들이 낸 일괄사퇴의 변(辯)은 한마디로 “명단 공개로 인해 공정한 검정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들의 표정에는 정권의 입김에 따라 교과서를 왜곡한 혐의자 쯤으로 몰리고 있는데 대한 불쾌감이 역력했다.
일련의 추이를 지켜 본 학계인사들은 “‘한국판 역사교과서 파동’이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한 사학자는 “제도의 문제가 사람의 문제로,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됐다”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는 수십년 관행을 마치 오늘 처음 돌발한 것인양 법석을 떨면서 “정권차원의 외압 가능성”까지 제기한 정치권과 이를 부추긴 일부 언론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원칙없이 상황에 이끌려 들어간 정부의 잘못이 더욱 커 보인다.
이상주(李相周) 교육부총리는 교과서 문제가 불거진 직후 국회에 출석,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며 “과거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죄송스럽다”고 이례적으로 무조건적인 사과를 했다.
원천적으로 문제발생의 소지가 있는 당대 정권에 대한 기술 ‘제도’가 아니라 이번에 새삼 물의를 촉발한 ‘사람’이 있어야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청와대까지 앞뒤 판단없이 성급하게 “교육부 관계자의 징계”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사태를 외곬으로 치닫게 한 원인이 됐다. 이러니 교육부 실무자들이 이후 재검정, 검정위원 공개 등에서 중심 못 잡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번 교과서 논란의 본질은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정치상황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역사관을 심어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지극히 정치적인 상황으로 다뤄지고 있는 현실은 기막힌 아이러니다.
김동국 사회부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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