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여아 정민이는 지난달 남동생 민우(4)와 함께 서울 관악구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공장일로 생계를 꾸려 가던 엄마는 1년 넘게 카드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돈 다 갚고 금방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간 후 감감 무소식이다.정민이네가 지고 있던 카드 빚은 5,000만원. 미싱일을 하던 아버지도 신용카드 대출금으로 도박에 손을 대고 저축과 전세 보증금을 날리더니 마침내 빚만 잔뜩 남겨 놓은 채 지난해 집을 나가 버렸다. 졸지에 ‘카드 고아’ 신세가 된 정민이는 “동생 잘 보고 있으면 엄마가 금방 데리러 올 꺼예요”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 ‘신용 카드 고아’ 곳곳 속출
플라스틱 머니가 고아 아닌 고아를 양산하고 있다. 신용카드 빚이 이혼,가출 등 가족해체로 이어지면서 보육시설, 아동 일시 보호소 등에는 “빚을 갚을 때까지만…”이라는 꼬리표를 단 신용카드 고아들로 넘쳐난다.
서울 성북구 수양부모협회에도 카드 빚을 감당못해 당분간 아이를 맡기고 싶다는 부모들의 상담전화가 전체의 70%에 이른다. 지난 한 달 간 협회를 통해 양부모를 찾은 아동 40명중 15명이 카드 빚에 쫓기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다.
최근 한 수양 부모 손에 맡겨진 은미(4)의 부모도 플라스틱 머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2,000만원의 카드빚을 진 신용불량자였다. 생활비를 대 주던 할아버지 사업마저 부도 나면서 은미 부모는 카드빚에 쪼들리다 못해 이혼했고 은미는 풍비박산난 가정을 뒤로한 채 낯선 수양부모의 손에 맡겨져야 했다.
협회 박영숙(朴英淑)회장은 “카드연체 독촉에 쫓기다 못해 아이 마저 포기하려는 부모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 더 이상의 가족해체 막아야
서울시립아동복지센터도 카드 빚에 쫓기는 부모 때문에 버려져 시설 배치를 기다리는 아동들이 전체 미아의 30%에 이른다. 이규동(李規東ㆍ55) 상담실장은 “처음에는 친척들에게 맡겨졌다가 결국 버려진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한국재활복지대학 김형식(金亨植)학장은 “카드빚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만큼 재정 상담(finance counseling), 아동 일시 보호 등의 재활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족해체를 막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천(金成天) 중앙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도 “무분별한 카드 발급이 결국 버려지는 아이들을 낳는 만큼, 저소득층 등 경제력이 없는 이들에 대한 카드 발급을 막아야 한다”며 “또 70만명에 이르는 개인 신용불량자 등에 대한 정부차원의 갱생 대책을 마련, 더 이상의 가족해체를 막아야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황재락기자 find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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