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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59)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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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59)마릴린 먼로

입력
2002.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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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8월5일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36세로 죽었다. 약물 과용 탓이었다.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마릴린은 그 때 전 남편인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와 다시 결합하기로 하고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있었다.1926년 6월1일 노마 진 모어텐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마릴린 먼로가 위대한 배우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출한 연기 재능을 지녔을 수는 있겠지만, 그녀는 그 재능을 충분히 펼쳐보지 못하고 너무 일찍 죽었다.

그러나 마릴린은 생전에 열광적인 팬들을 거느린 스타 배우였다. 그것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돌아오지 않는 강’, ‘7년만의 외출’ ‘버스 정류장’ ‘뜨거운 것이 좋아’ 같은 작품들이 영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서만은 아니었다. 마릴린은 영화의 성공 여부와는 독립적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몸매와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섹스는 내게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라는 그녀의 공언대로, 팬들은 그녀에게서 자극적인 성적 상징을 읽었다. 1953년에 나온 ‘플레이보이’ 창간호의 센터폴드를 장식한 것은 마릴린의 대형 컬러 누드 사진이었다.

마릴린은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수많은 염문을 뿌렸다. 그녀는 둘째 남편 조 디마지오와 셋째 남편 극작가 아서 밀러를 포함해 세 번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그녀의 성생활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배우 겸 가수 이브 몽탕과 프랭크 시나트라, 영화 제작자 조 솅크,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미합중국 대통령 존 케네디(와 어쩌면 그의 동생인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 같은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 그녀의 ‘베드메이트(bedmate)’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들 가운데 그녀를 진정으로 존중한 남자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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