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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6)3선 개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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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만섭(6)3선 개헌②

입력
2002.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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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4월초 야당인 신민당은 국회에서의 폭언 등을 이유로 권오병(權吳柄) 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냈다. 나를 비롯한 많은 공화당 의원들도 권 장관은 문제가 많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JP 계열의 의원들도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다른 의원들과는 다소 이유가 달랐다.“이번 기회에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야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도 국회의원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3선 개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힘을 보여줘야 한다.”

당내 분위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눈치챈 박 대통령은 김진만(金振晩) 원내총무를 급히 불렀다. 그리고는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해임건의안을 부결시키시오”

당은 해임건의안 표결 하루 전인 4월7일 당론 조정을 위해 의원총회를 열었다. 당 지도부는 이날 의원총회에 권 장관을 참석시켜 사과발언을 하도록 했다.

권 장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의원들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다. 평소 거만했던 권 장관은 허리를 90도로 굽혀 사과했다. “제가 여러 가지로 의원님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김진만 총무가 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지금 권 장관께서 사과도 하셨고 대통령께서도 해임건의안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결시키라는 언명을 하셨으니 내일은 행동 통일을 해 꼭 부결시킵시다.”

김 총무의 말에 일부는 “이의 없소”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나는 발언을 신청했다. 정정당당하게 내 태도를 밝히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표를 던지겠습니다. 문교 행정은 덕으로 해야 하는데 권 장관은 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일 투표에서 가표를 던질 것입니다. 당 지도부는 만일 권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된다면 대통령이나 공화당의 체면이 손상될 것이므로 이런 분위기를 대통령께 알려드리고 사전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전 대책이란 대통령이 권 장관 경질을 결심하고 그 대신 국회에서의 투표는 보류하는 등의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부결을 낙관했던지 내 말을 흘려 들었다.

드디어 투표일이 왔다. 본회의장에 나온 상당수 의원들은 고민하는 모습을 지우지 못했다. 분위기를 봐 가며 투표를 하겠다는 태도였다.

투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몇몇 초선 의원들이 다가와 내 귀에 대고 “나도 가표를 던졌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드디어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개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총 투표수 152표 중 가표가 89표, 부표 57표, 무효 3표로 권 장관 해임안은 가결됐다. 투표에 참여한 공화당 의원이 모두 100명이었으니 최소한 40여명이 당명을 어기고 신민당에 동조한 셈이었다.

당시 진해에 휴가를 가 있던 박 대통령은 노발대발, 급거 상경했다. 박 대통령은 길재호(吉在號) 사무총장을 불러 경위를 보고 받은 뒤 강경하게 명령했다. “즉시 항명 의원들을 색출해 1주일 이내에 제명해. 그리고 현체제에 불만을 가진 당원들은 모두 당을 떠나라고 해.”

결국 당에서는 주동 의원 5명을 제명했다. 양순직(楊淳稙) 예춘호(芮春浩) 박종태(朴鍾泰) 김달수(金達洙) 정태성(鄭泰成) 의원 등이었다. 죄목(?)은 ‘음성적으로 야당과 내통해 반란을 일으킨 자’였다.

나 역시 처음에는 당연히 제명대상에 올랐으나 마지막 순간에 빠졌다. 음성적으로 반발한 것이 아니라 의원총회에서 당당하게 태도를 밝혔다는 이유에서 박 대통령이 뺐다고 들었다.

아무튼 4ㆍ8 항명 사건은 JP계에 큰 타격을 안겼다. 그것은 공화당 내 3선 개헌 반대 세력이 힘을 잃게 되는 결과와 다름 없었다.

기세가 오른 개헌파는 한 달 뒤 공식적으로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정국은 본격적 개헌 국면에 접어 들었고 3선 개헌 반대파인 나로서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감내해야 할 시점이 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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