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저명한 역사학자인 폴 존슨의 ‘나폴레옹’이 5월 출간된 후 미국인들의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분량이 짧은 펭귄전기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수를 제외하면 한 개인으로서 가장 많은 전기가 쓰여진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이라는 점을 우선 지적한다. 나폴레옹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그의 끝없는 야망의 동기를 찾는 것에 지면을 할애한다.
하지만 존슨은 이 책에서 나폴레옹의 야망은 애국심과 같은 대의도 아니었고, 용병의 전통에 근거한 돈도 아니었으며, 뜻밖에도 일종의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권력을 거머쥐는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을 굳게 믿었고, 권력 획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는 기회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미 많이 쓰여진 나폴레옹 전기를 한 권 더 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폴레옹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영향은 그를 뒤따라 나타난 독재자들, 즉 20세기를 얼룩지게 한 전제정권에 있다고 한다.
정복 자체를 위한 팽창전은, 특히 독일어권 국가의 국수주의의 원인이 되었으며, 그의 독재정부 형태는 이후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 나타난 독재정권의 모델이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폴레옹을 더 이상 극적인 상승과 몰락을 표상하는 낭만적 인물로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냉정한 비판을 통해 20세기 비극의 되풀이를 피하자는 것이 저자의 취지이다.
뉴욕타임즈 북리뷰는 6월23일자에서 ‘나폴레옹’을 표지로 선정하고 이 책이 나폴레옹에 관한 책이라기보단 스탈린에 관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주 뉴욕타임즈 북리뷰의 표지로 등장한 책이 스탈린을 혹독하게 비판한 전기인 것을 보면 이 둘이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듯 보인다. 이제까지 언제나 ‘좋은 편’이던 자국이, 이번 사태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사는 ‘나쁜 편’이 될 수 있다는 데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들은 이후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못박아 강조해왔었다. 미국인들에게는 요즘이야말로 공산주의의 망령, 스탈린을 다시 불러오고, 그의 스승 격인 나폴레옹을 오직 권력만을 탐한 평면적인 인물로 환원시키기에 적당한 때가 아닐까.
박상미ㆍ재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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