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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체루야 살레브 장편소설 '남편과 아내' / 결혼13년째...껍질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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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체루야 살레브 장편소설 '남편과 아내' / 결혼13년째...껍질만 남았다

입력
2002.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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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신은 흙으로 남자를 만들고 그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게 짝을 만든 이유였다. 결혼의 기원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한다.그 제도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는 최초의 형식을 견고하게 유지해 왔다. 이스라엘 작가 체루야 살레브(43)가 장편소설 ‘남편과 아내’(전2권ㆍ푸른숲 발행)에서 헤아릴 수 없이 육중한 시간의 무게에 눌린 결혼 제도를 섬세하게 헤집었다.

1997년 장편 ‘러브 라이프’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가 2002년 발표한 이 책은 미국 프랑스 등 16개국에 소개돼 ‘어떤 작품도 필적하지 못하는 독보적 걸작’ 등 격찬을 받았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 남편은 짜증을 낸다. 당신은 어째 그렇게 매사에 자신만만해? 항상 당신만 옳지? 열 살 난 딸이 달려와 아빠의 목에 매달려 종알거린다.

아빠, 아빠를 얼마나 보고 싶어했다고. 아내는 딸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 어서 가서 옷 갈아 입어. 남편과 아내는 결혼 13년째다.

이 평범한 가정에 불행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이날 아침 몸을 일으키려던 남편 우디는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일어설 수가 없어. 못 움직이겠다고. 남편과 아내와 자식이라는 오랜 역사의 틀이 서서히 닳아지는 것은 이 순간부터다.

아내 나아마는 자신과 남편을 묶어왔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끈이 얼마나 숨막히는 것인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오랜 세월 나는 스스로를 타일러 왔다. 그는 나를 사랑하잖아, 라고. 그러나 그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 그의 사랑이 나에게 흡족한가에 대해 묻기를 주저해 왔다.”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가 얼마나 많은 틈을 숨기고 있는지, 얼마나 쉽게 깨어지고 부서질 수 있는지 하나하나 드러나는 게 지금부터다. 딸이 두 살이었을 때 나아마는 자신의 불륜을 털어놓았고 우디는 아이를 베란다에서 떨어뜨렸다.

딸은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남편은 서서히 겉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애써 상처를 보듬는 척했다. 아내의 가면은 다른 것이었다.

나아마가 어렸을 적 어머니는 선량한 아버지를 두고 집을 떠났다. 어머니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아마는 결혼 생활에서 돋게 마련인 상처를 무조건 덮으려고 했다. 얼기설기 꿰매왔던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남편의 다리 마비라는 사건으로 한 가닥 올이 풀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진다.

남편은 자신을 간호해준 여자와 떠나 버리고, 남편의 강요된 사랑에만 길들여졌던 아내는 절망에 빠진다.

허물어지는 부부의 심리가 섬뜩하게 전달되는 것은 작가의 독특한 문체를 통해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형의 문장만으로 전개되고, 단 한 번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의 생각과 언어에는 구약 성서에서의 성스러운 신의 음성이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은 건조한 21세기에 대한 농담처럼 보인다. 사랑은 형편없이 바래졌지만 결혼은 흔들림 없이 튼실하다. 이 시대에 신이 사랑을 구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기의 러브 스토리는 사랑의 달콤한 맛 대신 쓰디쓴 삶의 현실을 들이미는 것이다. “나의 작고 폐쇄적인 가족이 무너진 자리에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고통을 더는 법도 모르는 것이다.”

장편 ‘남편과 아내’에서 허물어져 가는 결혼 제도의 쓸쓸한 풍경을 묘사한 체루야 살레브.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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