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지구는 티끌에 불과할 수 있다. 하물며 지구에 사는 인간 개개인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하지만 인간은 과학적 지식을 꾸준히 확장시켜 우주를 연구하고, 인간 생명의 비밀을 캐고 있다. 전에는 감히 넘볼 수 없던 과학적 지식을 얻게 됐으며 그런 지식은 더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을 통해 인간은 우주와 자연의 모든 현상을 다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신만이 알 것 같은 영역까지도 알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물리학, 천문학, 유전학, 생물학 등의 세계적 석학 가운데는 연구를 확대하고 과학적 지식을 얻을수록 어떤 한계에 부닥친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한계에서 이들은 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영국 개방대학 물리학과 명예교수 러셀 스태나드가 엮은 ‘21세기의 신과 과학 그리고 인간’은 과학자,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책이다.
그가 신의 존재를 믿는 세계적인 과학자, 신학자 50명에게 “과학과 종교의 상호관계에서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얻은 답을 엮어 2000년에 펴낸 책이다.
대체로 이들은 특정 종교의 특정 대상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우연적인 현상을 신으로 파악한다. 런던 임피리얼칼리지 물리학과 교수 폴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한다.
“대폭발 이후 우주의 밀도가 1조분의 1만 높았어도 대폭발 10년 후 우주는 도로 수축해버렸을 것이다. 반면 1초 후 우주의 밀도가 1조분의 1만 낮았어도 우주는 10년 후 텅 비어버렸을 것이다…
최초의 폭발력이 10의 60제곱 분의 1만큼만 달라졌어도 우주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수많은 우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우연일 뿐일까. 이 우연이야말로 우주를 설계한 신의 존재를 증거해주는 것이 아닐까.”
미국 캘빈 칼리지 물리학과장 하워드 밴 틸도 생각이 비슷하다. “입자의 세계가 에너지를 원자로 바꾸고, 원자를 코끼리로, 인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이 있을까.
이토록 놀라운 우주의 능력이 무(無)로부터 저절로 생겨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창조적 정신의 증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키스 워드는 “유전자는 수천 세대에 걸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자연적 과정을 통해 인간을 탄생시켰다…유전자는 이기적이지도, 협동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어떤 초자연적 정신이 사고 능력이 없는 물질에서 책임감 있고 지적인 생명체를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물질의 원자구조에 정교하고 우아한 암호를 부여했다”고 말한다.
“중력의 존재는 알려져 있고 그 작용도 알려져 있지만, 중력이 왜 존재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과학은 물리법칙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이 왜 존재하는가는 설명하지 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응용수학과 교수 조지 엘리스는 이렇게 과학의 한계를 털어놓으면서 신의 존재를 이야기하려 한다.
나아가 미국 잡지 ‘뉴 리퍼블릭’의 편집장이자 ‘어틀랜틱 먼슬리’의 편집위원인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앞으로 수십년에 걸쳐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통해 신의 존재를 알게 될 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대로라면 과학과 종교는 결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없는 종교는 장님이고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은 음미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 정부가 저명한 고에너지 물리학자로 뒤늦게 신학을 전공, 사제 서품까지 받은 존 포킹혼을 유전자 복제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21세기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알리는 서곡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석학이 많은데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과학자의 글만 모았기 때문이다. 대립하는 양론 속에서 한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담았다.
그런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과학으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 현상 속에서 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 책은 그를 위해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다.
러셀 스태나드 엮음ㆍ이창희 옮김
두레 발행ㆍ9,800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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