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되면 아이들과 극장에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앞사람 머리 걱정할 것 없이 편안한 각도의 의자에 쿵쿵 울리는 입체 음향, 고소한 팝콘과 콜라… 요즘 영화관들은 쾌적한 시설과 환경이, 정말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1년 전 이맘때는 ‘이웃집 토토로’ ‘주라기공원3’ ‘혹성탈출’을, 지난 겨울방학에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을 보았다. 올 여름에는 ‘맨인블랙2’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릴로와 스티치’등을 만났다.
관람 희망 영화는 아직도 많다. ‘아이스 에이지’ ‘스튜어트 리틀2’도 보고 싶고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가만히 따져보니 일본 만화영화 두편을 제외하곤 몽땅 헐리우드 영화 일색이다.
나 어릴 적엔 어땠었지? 별다른 오락이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마 아버지 손잡고 영화관 나들이했던 기억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가만있자, 아마도 제일 먼저 본 영화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었지. 부모잃은 형제들의 삶을 그린 김수용감독의 히트작이었는데 정말 얼마나 슬프던지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젊어 한때 영화를 만드느라 가산을 탕진했던 아버지는 귀가길 내내 엄마로부터 ‘당신은 왜 저런 영화 못 만들고 집안 망해 먹었느냐’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만화영화라는 ‘홍길동’을 보러갔던 추억도 새롭다. 극장앞이 아이들과 부모들로 장사진이었는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의 활약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었다.
‘홍길동’의 히트로 홍길동의 애인인 ‘곱단이’를 제목으로 한 후편도 나왔는데 그것 역시 아버지 손잡고 보러 갔었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겠지만 서울 시내에 괴수가 출몰하는 ‘왕마귀’ ‘용가리’같은 영화도 우리 세대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 옛날 우리 영화가 별 경쟁력이 없는 시절이었는데도 내 어린 날의 영화는 국산품이 대부분이다. 한국 영화의 힘이 하늘을 찌를 듯 한다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보는 영화는? 완전히 수입품이다. 이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우리가 일부러 한국 영화를 기피하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이들하고 ‘라이터를 켜라’를 보기도 그렇고 ‘긴급조치 19호’처럼 영양가없는 영화를 보여줄 순 없고. ‘집으로’같은 영화도 있지만 큰 애는 ‘엄마, 그거 재미없대’하고 한마디로 잘랐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라는 오늘, 아이들 손잡고 가슴 두근거리며 보러 갈 우리 영화가 없다는 건 비극이다. 우리 감독님들, 대박 터뜨려 한 몫 잡는 것도 좋지만 우리 아이들의 추억에 남을 만한 근사한 작품 하나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떤가요.
/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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