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을 통과한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의 전·현 정권 편향기술 논란이 교과서 검정과정 전반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사실 이번 뿐 아니라 지금까지 역사관련 교과서가 줄곧 당대 정부의 치적을 부각시켜 왔다는 점에서 이번 파문을 계기로 교과서 제작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사의 기술 시점 문제를 포함, 교과서 검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짚어본다.
▼교과서 검정방식 공정ㆍ투명해야
최근 불거진 교과서 파문은 기본적으로 허술한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먼저 검정위원 선정의 객관성 결여가 지적된다. 한국교총 홍생표 선임연구원은 “검토위원 선정기준과 절차는 한마디로 ‘블랙박스’”로 베일에 가려 있다”면서 “하지만 출판업계에는 검토위원 선정 전부터 ‘누가 간다더라’며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는 등 검정절차 초반부터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검정위원을 선정할 때 관련 학계나 단체 등에서 공개적으로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부적절하게 기술된 부분을 수정ㆍ보완할 수 있는 절차가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행 방식에서는 교과서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은 데다 검정과정을 통과하면 교육인적자원부의 ‘직권 수정’ 이외에는 세부내용을 점검할 장치가 없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 “이번 검정은 3차례에 걸쳐 실시됐으며 검정위원이 외부와 격리된 공간에서 3박4일, 4박5일씩 검정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역사 교과서의 경우 전문분야가 다양한 데 교수, 교사 각각 5명씩 10명이 여러 출판사의 교과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지방 P고 국사교사인 K(37)씨는 “현재 교과서 검정은 사전에 위촉된 위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교과서를 최종 검정 통과시키기 전에 일선 학교의 사전검증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 정치적 편향성 논란과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대 정권 평가 배제돼야
역사ㆍ교육학계 일각에서는 ‘역사가는 현재를 포함한 모든 역사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역사 교과서도 현재의 사실까지 다루는 것을 피해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역사는 후대에서 평가해야 하는 만큼 당대에 일어난 일은 교과서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의 역사관련 교과서를 보면 현 정부 뿐아니라 이전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대통령 등 역대 정권들도 한결같이 자신의 업적을 부각시켰다. 따라서 당대의 사실을 다루더라도 교과서의 기술 시기나 수위, 분량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등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균관대의 한 교수는 “역사는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역사학에선 현대를 잘 다루려 하지 않고 근ㆍ현대사는 주로 정치학 분야에서 다뤄지고 있다”면서 “교과서에 현 정권 부분을 기술하는 것은 피해야 하고 굳이 다루려면 각 정권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교육장관 건정위원 최종 선정 외압·정치성향 작용 배제못해
1일 열린 국회 교육위에서 한나라당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검정위원중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추천한 인사가 1명도 들어있지않고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인사만 포함됐다"고 주장 검정위원 선정과정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검정위원중 평가원이 추천한 인사가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검정위원 10명중 2명이 평가원 추천인사"라고 반박했다.
1일 교육부가 밝힌 검정위원 선정 절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검정위원을 선정한 당시 교육부는 일단 시도 교육청이 추천한 교사 50명과 평가원이 추천한 교사,교수 16명 및 교육부 담당자가 추천한 위원중에서 3배수를 선정했다.
이어 외부인사 4명과 교육부 담당자 2명으로 구성된 '검정위원 선정위원회'를 구성, 한국 근현대사를 포함한 17개 검정대상 과목의 검정위원 후보자를 2배수로 선정했고, 12월15일 한국근현대사 10명등 각과목별 검정위원 360명을 일괄 위촉했다.
감정위원 위촉권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으나 통상적으로 학교정책실장(1급) 전결사항으로 당시 한완상 장관은 사후 보고를 받았다. 교육부는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검정위원 10명은 대학교수 4명, 초·중등교사 4명,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전문가 2명이며 평가원에서 추천한 16명중 교과서 집필에 관계한 4명과 본인이 고사한 3명을 제외한 9명중 2명이 검정위원으로 위촉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검정위원 선정과정에 교육부총리와 교육부 실무진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고 외압이나 편향성이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출신지나 정치적 성향등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총리의 최종 선정과정에서는 직종별, 전공별 안배를 포함해 실무자들은 알지 못하는 다른 기준도 적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김신복 차관은 이날 검정위원 명단 공개여부와 관련, "장·차관입장에서는 공개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지만 실무진들은 검정발표 이후 판정시비로 사생활 및 인격침해가 있을 수 있으며 무었보다 재검정을 앞두고 제대로 판정을 할수 없다는 의경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교과서 집필자 인터뷰
문제가 되고 있는 한 교과서의 현대사 부문 대표집필자인 A씨는 1일 “역사에 대한 가치평가보다는 사실기술의 관점에서 집필했다”며 “특정정권에 대한 편견이나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_ 교과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이 교과서에 이토록 관심을 갖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후세를 가르치는 중요한 책에 관심을 갖게 해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_ 김영삼(金泳三) 정권을 격하하고 현정권을 미화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역사에 대한 가치평가가 아닌, 교육차원에서 있는 사실을 담담하게 기술했다. 30년만에 나오는 검정교과서다. 집필진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결코 안이하게 내용을 기술하지 않았다.”
_ YS정권 당시 일어난 대형사고에 대한 기술도 정권격하로 비춰지고 있는데.
“당시의 불안하고 들뜬 사회분위기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기술했다. 대형사고는 이전부터 진행돼 온 부정부패와 비리의 결과물이다. 다만 이 부분을 정권을 설명하는 대목에 포함시킨 것에 대한 내부논란은 있었다.”
_ YS정권의 비리만 다뤘다는 지적에 대해.
“사실을 기술했다. 한보사건 등 당시의 비리는 있어서는 안되는 ‘사실’들이었다. 현정권 비리문제는 최근 불거져 조사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더욱이 교과서는 지난해 7월에 제출됐다.”
_ 재임 중인 대통령에 대한 기술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있는데.
“내부에서도 거론됐지만 선을 긋기는 어렵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교단에선 현재와 과거의 사실을 비교하며 가르친다. 미국은 4쪽 분량으로 현 부시대통령을 다루고 있고 프랑스도 현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의 주장까지 기술하고 있다.”
_ 교과서 수정계획은.
“2차 검정이 끝났을 뿐 교육부의 적격통지가 나지 않은 미완성 교과서다. 형평성과 공평성, 걸러지지 않은 학설인용 등에 대한 지적을 충분히 수용하고 검토하겠다. 완성본 교과서도 절차를 거쳐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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