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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57)카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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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57)카루소

입력
2002.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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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8월2일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가 48세로 작고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택시 운전기사까지도 반쯤은 성악가고 특히 나폴리 사람들은 틀림없이 온전한 성악가라는 농담도 있지만, 나폴리 출신의 카루소야말로 성악가 중의 성악가였다.카루소가 노래하는 걸 처음 들었을 때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는 “누가 그를 보냈을까? 신일까?”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카루소의 미성(美聲)은 20세기 초 세계 주요 극장의 성악 무대를 평정했다.

좀더 공정해지려면 체코 출신의 독일 테너 가수 레오 슬레자크와 함께 당대의 성악계를 평정했다고 말해야겠지만, 그것은 오직 유럽 대륙 안에서의 얘기였다. 미국이나 영국을 포함해 유럽 대륙 바깥에서는 슬레자크가 카루소의 명성을 따를 수 없었다.

카루소는 세계 오페라 가수들의 꿈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무대에만 무려 607회나 올랐다. 카루소가 아니었다면, 20세기 초엽이 오페라의 황금시대로 기록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한 세기 전 조국에서 확립된 벨칸토 창법의 일인자였다.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의 벨칸토는 극적 표현보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가락 을 중시하는 창법이다. 카루소 이후 ‘제2의 카루소’라는 표현은 뛰어난 테너 가수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가 되었다. 스웨덴의 비엘링도, 이탈리아의 질리도 다 ‘제2의 카루소’였다.

카루소는 요즘의 대중 가수 못지않게 수많은 ‘오빠 부대’를 거느렸다. 감동이 복받친 여성 팬들은 무대로 올라 눈물을 흘리며 그의 옷 단추라도 하나 뜯어가려고 애썼다고 전한다.

카루소는 많은 염문을 뿌렸고, 여자들과의 이런저런 문제는 더러 법정으로까지 옮겨지기도 했다. 카루소는 죽은 지 66년이 지난 1987년 생전의 업적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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