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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청학동 맞나요?" 학원·유흥업소 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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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청학동 맞나요?" 학원·유흥업소 난립

입력
2002.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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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새 기념품가게·술집 줄줄이...돈벌이 급급은자의 마을 청학동(靑鶴洞)은 더 이상 없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해발 800m 지리산 자락에 깊숙히 자리한 청학동은 원래 세속과 절연한 40여가구 200여명 주민이 고집스럽게 우리의 전통을 지켜가던 도인촌(道人村). 그러나 지금은 서울 강남지역을 방불케하는 학원가와 숙박·유흥업소 등이 난립해 예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30일 마을 한가운데까지 뚫린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들어선 청학동은 여느 도시의 상업지역 분위기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입구서부터 조악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 슈퍼들이 늘어섰고 곳곳에 기와만 얹은 국적불명 건축양식의 술집, 카페, 여관, 민박집들이 들어차 있다. 주차장과 좁은 길목들을 빈틈없이 메운 승용차들 사이로 상인들과 관광객, 여름 서당의 학동들이 북적거렸다.

서울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찾아온 김병현(41·서초구 방배동)씨는 “아이들에게 교육이 될까해서 왔는데 복잡한 유원지 풍경이어서 크게 실망했다”며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상투와 댕기머리에 한복을 입은 주민들이 밭농사와 약초캐기로 살아가던 청학동이 이처럼 급변하게 된 것은 5~6년 전부터. 방송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되면서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외지인들이 대거 몰려든 때문이다.

청학동을 변질시킨 가장 큰 주범은 도처에 마구잡이로 세워진 서당들이라는 게 마을사람들의 얘기다. 알음알음 찾아온 소수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전통문화와 학문, 예절을 가르치던 두어 곳 서당이 지금은 대부분 외지인 업자들이 운영하는 수십 곳의 전문연수학원들로 바뀌어 있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2주일 코스의 서당교육을 신청한 초등·중학생들이 무려 1만여명.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이 이뤄지고 서울까지 장거리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서당도 있다. 심지어 기(氣)치료법,기(氣)모으기등 검증되지 않는 교육내용을 가르치는 서당에다, 모자라는 훈장 선생님을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 대학생을 강사로 쓰기도 한다.

청학동 출신의 김모(40) 훈장은 “외지에서 돈벌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 머리따고 한복입고서는 청학동 사람행세를 해 이미지를 흐리고 있다”며 “청학동 내 서당 30여개 중 80%가 그런 곳”이라고 못마땅해 했다.

주민들은 그동안 청학동 복원을 위해 여러 차례 당국에 불법건축과 불법영업 단속을 요구하고 안동 하회마을처럼 보존지구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했으나 묵살돼 왔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곳에서 40여년을 살아온 서경수(徐坰洙ㆍ75)씨는 “마을이 현대화와 상업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옛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면서 “이젠 주민들도 굳이 예전의 고생스런 생계수단에 의존하려 들지 않아 소중한 옛 정신마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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