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순,美.日외무와 회동북한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의 31일 브루나이 행보는 꽉 막혀 있던 북미ㆍ북일 관계 등 한반도 정세를 단번에 대화국면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백 외무상은 특히 이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전격적으로 회동, 북측이 사활적 사안으로 간주하고 있는 북미대화를 1년7개월 만에 재개키로 합의했다.
북미ㆍ북일 관계의 개선은 7차 남북 장관급회담 개최 합의와 8ㆍ15 공동행사 등 민간교류, 임금ㆍ물가 인상 등 북한 내부의 경제개혁 조치 등 일련의 남북 현안과 맞물려 한반도 전체에 분위기완화 무드를 조성할 전망이다.
■북미대화
이번 북미 외무장관 회동은 특히 최근 북측의 화해 제스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온 파월 장관이 백 외무상으로부터 직접 대화 의지를 확인했다는 데 우선적 의미가 있다.
파월 장관은 비확산 및 제네바합의 이행 문제에 덧붙여 북측이 꺼리는 의제인 재래식 군비 감축 문제까지 논의하자고 제의했으나, 백 외무상은 경수로 전력 손실 보장 등으로 맞불을 놓지 않고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의 무응답으로 무기 연기한 대북특사 파견을 조만간 재추진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선 “미 국무부가 현재 제임스 켈리 동아태차관보의 방북 일자를 조율 중”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사실 북미 양국은 2000년에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전면적인 대화국면에 진입한 적이 있다.
백 외무상은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사상 최초의 북미 외무장관 회담을 가졌고 3개월 후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 등 중대한 관계 개선 조치가 잇따랐다.
양국 외무장관 회담으로 진전된 북미관계는 7일 북한 경수로 현장에서 열리는 콘크리트 타설식에 잭 프리처드 미 대북교섭담당 대사가 참석함으로써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측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면서 북측에 핵개발 동결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
파월 장관이 이날 ARF 외무장관 회의석상에서 “앞으로 환경이 조성돼 북한과 대화하길 바란다”고 밝힌 것처럼 화해를 지향하는 녹색 신호들이 빠른 속도로 켜지고 있는 셈이다.
■북일협상
당초 예상대로 백 외무상과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무장관의 회담으로 수교협상을 위한 준비접촉 일정이 도출되는 등 북일 관계가 이번 ARF를 계기로 급진전됐다.
양국 관계는 최근 북한이 요도호 납치범 일본 귀국 문제 등에 전향적 태도를 취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과거청산을 통한 배상으로 안정적으로 경제개혁을 추구하겠다는 북측의 대화 수요가 그만큼 컸던 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일 협상의 진전은 한국과 미국이 각각 국내여론 등에 묶여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을 앞세운 한미일 대북정책공조의 일환인 측면도 있다.
향후 북일 적십자회담을 통해 일본인 행방불명자 소재파악 등 인도적 문제가 탄력을 받고, 반대 급부로 지난해 이후 중단된 대북 식량지원이 추진될 전망이다.
/반다르 세리 베가완(브루나이)=이동준 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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