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8월1일 독일 뮌헨에서 윤이상(尹伊桑ㆍ1917~1995)의 오페라 ‘심청’이 초연됐다. 독일 극작가 하랄트 쿤츠가 대본을 쓴 ‘심청’은 그 해 뮌헨에서 열린 제20회 여름 올림픽을 기념해 만들어졌다.오페라 ‘심청’은 무대를 영생(永生)의 공간인 ‘천상(天上)’과 세상살이의 공간인 ‘지상(地上)’ 그리고 죽음의 공간인 ‘바다’로 나누어 우리 고전 ‘심청전’을 새롭게 구성했다. 고음이 위태롭게 넘실대는 윤이상 음악의 탈투(脫套)는 선불교와 노장(老莊)의 분위기를 점점이 박은 쿤츠의 리브레토와 어우러져, 오페라 ‘심청’을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탈속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윤이상의 조국 한국에서 오페라 ‘심청’이 초연된 것은 작곡자가 작고하고 4년이 지난 1999년 들어서다. 그를 독일에서 납치해 간첩으로 몰았던 박정희 정권은 1979년에 무너졌지만, 뒤이은 군사 정권은 물론이고 민간 정권도 끝내 이 ‘불온 인물’의 ‘조건 없는’ 조국 방문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된 1967년 사건은 흔히 ‘동백림 사건’이라고 불린다. ‘백림(伯林)’은 베를린의 한자 이름이다. 이 사건에는 재불(在佛) 화가 이응로(李應魯)도 걸려들었다.
두 해 동안의 옥살이 끝에 서독 정부의 노력으로 풀려난 윤이상은 베를린으로 돌아가 얼마 뒤 서독에 귀화했고, 결국 독일인으로 죽었다. 작고하기 한 해 전인 1994년 정부가 그에게 내놓은 ‘귀국 조건’ 때문에 윤이상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을 때, 기자는 베를린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20세기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틀림없을 그는 조국을 방문하기 위해 ‘서약서’라는 이름의 ‘반성문’을 쓰는 것은 그 때까지 자신이 추구해온 예술 세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분개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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